한국일보

[칼럼] 북한 인권문제 왜 외면하나

2004-09-23 (목)
크게 작게
이기영(주필)

인권변호사 출신인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후 한국은 인권이 모든 국정의 우선과제가 되는 「인권 공화국」이 되었다. 인권문제를 다루는 국가기관으로 국가 인권위원회가 설치되어 국정 각 분야의 인권침해 문제를 관장하고 있다. 또 과거 정권시절의 인권유린 사태를 규명하기 위한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도 생겨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인권이 중요시되자 주로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인권활동이 활기를 띠고 있다.인권유린 사태의 진상을 규명하는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최근 군대 내의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해 군사법원을 폐지하고 군검찰을 독립시킬 것을 건의했다. 이 위원회는 과거 간첩에 대한 가혹행위를 인권 침해라고 규정하고 간첩이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판단을 발표하여 물의를 빚기도 했다. 또 국가인권위원회는 과거에 인권 탄압의 도구로 악용되었던 국가 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국가의 보위와 안전 보다는 인권을 우선해야 한다는 발상에서 나온 권고일 것이다.이런 가운데 지난주 서울에서는 사상 최대 규모의 세계국가인권대회가 개최됐다.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가 주관한 이 대회는 노대통령이 개막식에 참석한 가운데 4일간 열렸다.

그리하여 대회 마지막 날 분쟁과 테러과정의 인권 침해에 관한 개선 방안을 담은 서울 인권선언문이 채택됐다.그런 인권문제가 나오면 빼놓을 수 없는 나라가 있다. 그 나라는 바로 북한이다. 북한은 외부세계와 고립된 상태의 독재체제 아래에 있는 인권의 사각지대로 그 안에서 온갖 인권유린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

탈북자들과 서방 언론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 북한의 정치수용소는 나치 시대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비할 만큼 처참한 상태라고 한다. 정치범이나 일반 형사범이 재판 없이 공개 처형되기도 하고 최근에는 사람을 상대로 생체실험까지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 모든 북한인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인권 불모지이다.미국 인권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에는 정치범 강제수용소가 최소한 6개가 있으며 이 수용소에 수만명이 수용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은 공개처형, 매질, 고문 등 참혹한 인권유린
상태를 겪고 있다고 한다.

지난 13일 북한을 방문했던 영국의 빌 라멜 외무차관은 북한 관리로부터 수용소의 존재 사실을 확인했고 북한이 인권문제에 우선을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 시인을 받았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히기도 했다.미국은 이와 같은 북한의 인권실태를 개선하기 위해 북한인권법을 마련 중이다.

지난 7월 하원을 통과한 이 법안은 현재 상원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 내용은 탈북자를 돕고 지원하는 단체를 지원하고 북한에서 각종 인권 침해가 개선될 수 있도록 미국이 지원하여 북한인의 인권을 신장하고 자유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권이라면 기를 쓰고 인권문제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한국은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않고 있다. 정부 뿐 아니라 인권을 전매특허로 팔아먹고 있는 국내의 인권단체들도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 침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저 침묵하는 정도가 아니라 북한의 인권상황을 비호하는 작태까지 보이고 있다.


미하원에서 북한인권법안이 통과되자 일부 여당 의원들이 이에 반발하여 북한인권법안이 한반도의 평화 정착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반대 의견서를 미국에 전달했다. 이들은 미국의 북한인권법안에 반대하는 국회 결의안까지 추진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미국 뿐 아니라 유럽 국가들도 우려하고 있고 유엔 인권위원회에서도 결의안을 채택한 사안이다. 말하자면 북한의 인권문제는 국제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개선을 촉구하고 있는 문제이다. 그런데 인권을 금과옥조로 삼고 있는 한국만이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이와 같은 한국이 진정한 인권국가일까.

이제 한국은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된다. 한국의 영토를 ‘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은 북한인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인정하고 있다. 한국이 북한인의 인권 상황을 못 본체 한다면 같은 동포의 고통을 외면하는데 그치지 않고 국민의 인권유린 사태를 방치하는 것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노대통령의 인권 변호사의 타이틀은 정치권력에 접근하기 위한 이력에 불과했을 뿐이며 인권을 중시한다고 하는 현정부는 북한인에게 고통을 주는 대가로 독재자와 야합해 공생공존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
하게 될 것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