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얼굴만 보아도 아름다운 사람들

2004-09-2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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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신비하다. 몇십억 인구 중에 얼굴이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그 조화란 신비하기만 하다.얼굴이 면적이나 큰가? 앞으로 눈, 코, 입에 옆으로 귀 하나씩, 누구나 가지고 있는 몇 안되는 얼굴의 기능기관들, 얼핏 보기에는 다 엇비슷한데 얼굴 전체에다 섞어서 보면 생김생김
이 모두가 다르다.

일란성 쌍둥이도 잘 보면 그 얼굴이 다르다. 한 마디로 말해서 각자가 특성을 가지고 세상에 온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은 지나고 보아야 그 사람을 내용 면에서 알 수가 있는데 우리는 알게 모르게 첫 인상에서부터 그 사람을 가늠하게 된다.


보기만 해도 부자같은 사람, 받은 것도 없는데 부처님처럼 푸근한 사람, 천국을 손에 쥐고도 예수님처럼 고통스러워하는 사람, 알고 보면 돈이 많아도 가난해 보이는 사람, 공부를 많이 해도 무식해 보이는 사람, 교양이 많아도 상스러워 보이는 사람, 알고보면 무지랭이인데도 잘나 보이는 사람, 등등, 감출 수 없는 얼굴은 내용이야 어떠하든 간에 외형만으로 상대에게 짤막한 인상을 보낸다.

그러니 어떤 사람은 얼굴 하나로 덕을 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손해를 보기도 한다. 나는 천하게 생긴 사람은 왠지 마음에 들지가 않지만 얼굴을 이기는 것은 노력이고 행동이며 뚜렷한 인생관이라고 여긴다.

일본의 현재 수상인 고이즈미의 얼굴이나 한국에서 가요계를 휩쓰는 어느 인기가수 같이 천하게 생긴 사람,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꼬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행보를 보면 마음에 든다.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기 가수가 되거나 수상이 되기까지 부단한 노력을 한 사람들이다.

고이즈미의 얼굴을 뜯어보자. 뱀같은 실눈에 일자로 꽉 다문 얇은 입술, 살도 없던 얼굴에 매서운 서릿발을 내뿜는 광대뼈, 얼굴 한번 흔들지 않고 걷는 거만한 발걸음, 그걸 위장하느라고 부드러운 예술가처럼 귀 밑까지 가린 긴 머리카락, 그런데도 나는 이상하게 그의 꼿꼿하고도 으시시한 자세가 좋다. ‘저게 남자지’ 하는 생각이 든다.

술자리에서는 어떨런지 몰라도 내용이 없는 말은 하지 않는다. 좀처럼 헤픈 말은 하지 않는다. 한국역사에 남을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현대그룹을 창립하여 세계적인 회사로 만든 고 정주영 회장 또한 얼굴로 따지자면 고이즈미 일본수상의 얼굴과 버금간다.

어디 한 군데 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천상인데 그분들의 내용물이 그 분들을 역사에 남도록 했고, 그 내용물들을 챙기기까지의 연구와 노력, 더욱이 역경을 헤쳐걷던 추진력이야말로 타인의 추종을 불허했다.볼품 없는 한 개의 돌이라도 다듬으면 탑돌이 되고 휘어진 나무 한 토막이라도 깎기만 잘 하면 가구에 쓸 수가 있다. 사람은 얼굴 보다 내용이라야 한다.

한국일보 문학교실에서 강의를 한 지가 어언 4년이 되어간다. 바쁘기 그지 없는 오후시간 한 토막을 툭 잘라 공책 한 권에 연필을 들고 강의실을 찾아오는 중년의 여인들을 바라보면 아름답다.

전철의 딱딱한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여인을 바라보면 아름답다. 책방의 책장을 차근차근 훑어보며 더듬거리는 여인을 보면 아름답다. 나무 그늘 밑에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보는 여인을 보면 아름답다 못해 차라리 그윽하다. 분홍바늘 꽃, 세상살이에 필요한 것이 바늘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부드럽고 따스하게 하는 분홍의 색깔도 필요하다. 분홍의 색깔은 아름다움 깊은 데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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