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루 먹을 만큼만...

2004-09-2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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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춘기(골동품 복원가)

자연치료법을 전공하는 미국의 여의사 말로 모건은 호주에서 의료활동을 하고 있었다. 호주 원주민 생활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사막에서 열리는 원주민 집회에 초청을 받고 흥분한다.

런던의 인간 쓰레기들을 한 배 실어다 퍼다 버린 호주땅에는 5만년 전부터 원주민 오스트로이드 부족이 살고 있었다. 멋 부리게 차려입은 옷은 몽땅 모닥불에 불태워지고 발가벗은 알몸에 원주민과 똑같이 손바닥만한 걸레쪽으로 그 곳 그 것만을 가리고 원주민 행렬에 참가한다.


이렇게 시작한 원주민 62명과의 호주 대사막 횡단여행은 4개월 동안 계속된다.책 ‘무탄트 메시지’는 여의사 말로 모건이 이 때 원주민과 더불어 생활하고 체험한 4개월 동안의 기행을 글로 엮어낸 책이다.

스스로를 ‘참사람 부족’이라 일컫는 이들 오스트로이드 원주민은 문명인을 가리켜 ‘무탄트’라 부른다. 무탄트란 돌연변이란 뜻이다. 기본 구조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 본래의 모습을 상실한 존재를 말한다.

인간이란 자연의 일부로서 함께 살아가야 할 천지만물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고 마구 짓밟고 돌아가는 문명인들은 원주민의 눈에는 확실한 돌연변이로 보였던 것이다.

5만년 전부터 그곳에 살아온 원주민은 말한다. “무탄트들이 우리를 식인종이라고 야만인 취급한다는 것, 우리도 알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식인종이다. 우리 식인종은 하루에 먹을만큼만 사람을 죽인다. 그런데 무탄트(문명인)들은 어떤가. 먹을 것 산더미같이 옆에 쌓아놓고 수 백명 수 천명씩 서로 죽이고 있지 않은가!”

사타구니만 겨우 가리고 원주민 추장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여의사 말로 모건은 추장의 시선을 피했다. 바로 쳐다볼 염치를 상실한 것이다.
추장의 말은 계속된다.

“우리는 살기 좋은 해변가로부터 대륙 오지로 쫓기고 있다. 보다시피 이곳은 사막지대이다. 그런데 사막지대 가운데서도 경관이 아름답고 쓸만한 땅은 국립공원으로 묶어놓고 원주민은 얼씬도 못하게 하고 있다. 이 땅은 5만년 전부터 조상들이 살아온 바로 우리의 어머니인데도 말이다”나는 원주민 추장이 여의사 말로 모건에게 뱉어놓은 말 “그래 우리는 식인종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루에 먹을만큼만 사람을 죽인다”를 몇 번이고 되씹어 본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아무리 사나운 사자라 할지라도 산돼지 한 마리 잡아 실컷 포식하고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 안식을 취할 때 사슴새끼가 코 앞에서 얼씬거려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그런데 먹물깨나 먹었다는 무탄트(문명인)는 어떠한가.


우선 배 터지게 먹는다. 그리고 남은 것은 이고, 지고, 들고, 물고 일어서 가다가 돌아본다. 그래도 거기에 먹을 것이 남아 있으면 발로 짓이겨 버린다.

남이 먹으면 배가 아프다. 먹어도 나 혼자 먹고, 다른 사람들 내가 먹는 것을 부러워하여야 한다. 남과 더불어 즐기는 들에 핀 장미꽃은 안된다. 허리를 작신 분질러 우리집, 그것도 내 방 꽃병에 꽂아놓고 나 홀로 보고 즐겨야 한다. 극단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치닫고 있는 세계화라는 돌림병! 나는 생각한다. “하루에 먹을 만큼만 사람을 잡는다”는 기막힌 식인종의 윤리를!

중세기 유럽을 죽음의 도가니로 몰아갔던 돌림병 ‘흑사병’은 불로 다스렸다. 지금 지구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가고 있는 ‘테러’라는 돌림병 앞에 ‘무탄트’들은 속수무책이다.

이 돌림병의 뿌리를 뒤집어 볼 때 이것은 분명히 종교인의 몫인데도 기도만 하고 앉아있을 뿐 속수무책이다.인간은 이것이 속수무책이 아니라 손쉬운 해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바로 자연을 배우고 자연에 가깝게 닥아가고 결국 사람은 자연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거짓 없이
받아들이는 길이다.

자연은 인간 자체이지 결코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나는 크리족 인디언의 한 예언자의 말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맺는다.“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뒤에야, 마지막 강물이 더렵혀진 뒤에야,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뒤
에야 그대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이 돈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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