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도 아이가 있어요’

2004-09-2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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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학교의 중요한 행사는 입학식·졸업식과 개학·방학이다. 일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것이 일상과정에서 되풀이 되면서 성장 발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행사들을 중요시하고 면밀하게 계획하여 실천에 옮기고 있다. 바로 개학날 이 사건이 있었다는 것이다.

전세계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된 러시아 북오세티아공화국 베슬란학교 인질극 영상은 큰 놀라움이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삼은 점에서 분노를 느끼게 했다. 누가 무엇 때문에 벌인 일인 지 분명치 않지만, 그것과 관계 없이 어린이들이 희생되었음은 끔찍한 일이다.


죽은 줄 알았던 인질 소년 게오르그는 ‘어떻게 살아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보았던 장면을 꿈 속에서 다시 볼까 두렵다’고 말하고 있다. 이번 사태로 인질을 경험한 어린이들에게 미칠 정신적인 후유증을 염려하며 몸서리 친다.

사회의 각종 사건에서 희생양이 되는 것이 많은 경우 어린이들이다. 그들이 아직 약하기 때문이다. 심신이 미숙한 상태인 어린이들은 자기 방어의 힘이 거의 없다. 그래서 어처구니 없게 이런 일 저런 일을 당하고만 있다.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일은 어른들이 맡아야 하는 책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른들이 가해자가 될 수 있겠는가.

‘나도 아이가 있어요’ 어떤 모임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게 되면 딱딱하던 분위기가 바로 부드럽게 된다. ‘그래 몇이나 두셨지요?’ ‘그들이 어떻게 자라고 있지요?’ 등등 공통적인 화제에 꽃이 피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이 말을 이번 사건의 인질범 중의 한 사람이 말하였다고 전한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나도 아이가 있어요’라고 말하였을까.

그가 일을 맡기 전에는 어린이들을 인질로 삼는 줄 몰랐다는 것인가. 갇힌 어린이들을 보면서 자신의 죄악감을 느낀다는 것인가. 아니면 내 아이가 생각난다는 것인가. 하여튼 인질범의 이 한 마디 말은 그도 인간임을 알려준다.

본래의 ‘나도 아이가 있어요’라는 말에는 자랑스러움이 가득 담겨 있다. 어린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자연 현상인 것 같지만,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어린이가 아니다. 어린이와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하나의 요소이다.

그래서 유모차의 행렬도 볼 수 있다. 뉴욕 동쪽 미드타운 어느 지역 어느 시간대에는 유모차의 행렬을 만나게 된다. 흔히 서너 대씩 유모차들을 몰고 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안에 있는 아기들과 유모차를 몰고 가는 사람들의 살갗 색깔이 서로 다른 것도 재미있다.

어쩌면 그 사람들은 아기를 보아주는 직업인일 지 모른다. 그렇게 남에게 일시적으로 맡기는 일이 있더라도 아기를 기르고 싶은 것이 인정이다.
어린이들은 모든 면에서 미숙하여 어른의 보호가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보호는 오직 신체적인 보호를 뜻하지 않는다. 그들의 인성이 올곧게 자랄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몸은 건장하지만 인성이 포악하면 곤란하다. 품성이 바람직하지만 몸이 허약하여도 걱정이다. 몸과 마음이 균형 있게 자라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다. 부모가 자녀의 심신이 건강하게 자라나기만 기다리고 있다면 요행을 바라는 것이다. 바라는 것 만큼의 노력에 따라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부모는 나무를 가꾸는 일을 하는 정원사가 되어 좋은 열매를 맺도록 힘쓸 수 밖에 없다. 어린이들의 성장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유전자와 환경 두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라는 것은 영원히 풀릴 것 같지 않은 화두이다. 후천적으로 유전자를 바꾸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 남게 된다.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교육은 환경을 좋게 하는 일이다. 인성 교육의 많은 부분을 가정에서 분담하게 된다. 생활을 같이 하면서 인성 발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러시아의 테러사건에서 충격을 받은 우리들은 ‘나도 아이가 있어요’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되풀이 할 수 있는 행복을 곰곰히 되새김질해야 할 줄 안다. 우리에게 어린이들이 있음을 새삼스럽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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