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판 솔로몬 판결

2004-05-2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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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오(우드사이드)

얼떨떨 하다. 마치 고무방망이로 뒤통수라도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양심적으로 병역을 거부했다는 소위 ‘양심적 병역 기피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니! 양심적 병역 기피의 기분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과연 이런 판결이 가능한지 심히 궁금하다. 여기서 우리는 전문적인 법리 논쟁보다 누구나 수긍하기 쉬운 상식 위에서 이 문제를 한 번 생각해 보자.

지난 대선 때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미군 철수를 외쳐대며 촛불시위로 나날들을 지샜던가? 드디어 그들의 주장대로, 소원대로 미군들은 다시 보충이 없는 철수를 서두르게 되었고 가까운 장래에 전원 철수마저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젊은이들 마저 이라크로 파병되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이같은 상황으로 생기는 전력 공백을 무엇으로 메울 것인가?
당장은 인원 보충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정부에서는 자주국방으로 전력을 보강하겠다고 하지만 그 자주국방이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 자주국방에는 첨단무기가 필수다. 그러나 그 많은, 그 비싼 첨단무기로 무장할 재원이 당장 어디서 나오겠는가?

싫으나 좋으나 현 우리의 입장에서는 전력 보강에는 인원 보충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는 터에 단 한 사람의 병력 기피자라 할 지라도 면죄부를 주는 것이 타당한 일인가?

누가 뭐래도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생각할 때 이번 무죄 판결은 이적행위에 속한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과격한 생각일까?

그렇지 않아도 이곳 미국 조야에서 마저도 한국의 현정부의 친좌파적 성향에 회의를 품고 있는 마당에 그같은 판결이 과연 옳은 판결일까?

재판부는 국가안보 우려에 대해 “양심적 병역 거부자는 연간 징병인원 30만명의 0.2%(600여명)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국방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고 첨단무기가 주도하는 현대전에서는 별 문제가 없다”고 한다.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0.2%라는 숫자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양심적 병역기피자들의 무리가 미치는 파장, 다시 말해 병역기피 확산이 문제라는 것이다.

아울러 그러한 특혜를 받지 못하는 병역 이행자들이 받는 소외감 내지는 자괴지심이 가지고 올 전력 손실을 생각해 보았는가? 헌법 제 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또 헌법 제 39조는 “모든 국민은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규정되어 있다. 양심의 자유를 내걸고 신성한 병역의무를 기피하려는 풍조가 만연될 경우 누구라 국방의 의무를 지고자 하겠는가?

병역 거부자는 “여호와의 증인”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그들의 교리에 의해서 병역 의무를 거부하는 모양인데 그들은 교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이다. 나는 종교의 교리가 헌법에 우선할 수 없고, 종교가 국가 우위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없는 종교가 있을 수 없으며 양심의 자유 또한 있을 수 없다.
담당 판사는 대체복무 제도를 도입하면 고의적 병역 기피자는 가려낼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무죄선고 담당판사에게 물어보자. 병역의무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적의 침략으로부터 내 고장, 내 나라를 지키자는 것이 목적이 아닌가? 그런데 양심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총 대신 삽을, 훈련 대신 봉사활동을 하는 대체복무를 한 사람이 국가 위기시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양심도 좋고, 종교도 좋고 다 좋다. 그러나 국민이라면 최소한 4대 의무 정도는 충실히 이행한 후에 각종 자유를 요구하고, 그리고 만끽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상급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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