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트로이와 이라크

2004-05-2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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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편집국 부국장)

인간이 존재하는 한 지구상 어느 한구석에서는 다툼과 시기 질투, 죽음이 내재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지금 이라크에서는 정의, 자유, 민주화를 기치로 한 팍스 아메리카나의 영광스런 면을 보여주려 했으나 날로 거세지는 반군세력과 이라크 포로 학대사건 등 미국의 체면이 구겨지는 일들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장기화된 이라크 사태는 세계 각국의 개스비와 주식을 춤추게 만들고 특히 미국 본토에는 시도 때도 없이 테러 공격 시도설과 알카에다가 1만8,000명 이상의 잠재적 테러리스트를 보유하고 있다는 등 미 국민뿐 아니라 잘 살아보겠다고 이 나라에 온 이민자들까지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주 볼프강 페트선 감독의 영화 ‘트로이’(Troy)를 보면서 좋았던 점은 그 어렵고 복잡한 고대 그리이스 역사를 너무나 쉽게 풀어가 버린 것이었다. 사랑 때문에 국가간에 전쟁이 일어나고, 열심히 선봉에서 싸우던 불사신 아킬레스(브래드 핏) 역시 사랑으로 방심한 끝에 발꿈치에 화살을 맞고 죽어간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처연했던 점은 참으로 많은 목숨들이 허수아비 쓰러지듯 속절없이 죽어서 휴전시간인 밤이면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던져지는 것이었다. 아침결에 아내와 갓난아기를 안아주던 손길이 딱딱하게 굳어버려 다시는 웃을 수도 말할 수도 없이 재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지난해 5월 이라크 전쟁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으나 그 이후 더욱 많은 위험 속에 있는 미군들, 자신이 살고있는 곳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죽어가고 있는 수천명의 이라크 민간인, 그 모두가 3,000년 전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을 때만큼 세월이 흐른 다음에 어떻게 역사에 기록되어 있을 것인가?

트로이의 파리스(올랜드 블룸) 왕자와 스파르타의 헬레네(다이앤 크루거) 왕비의 눈 먼 사랑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헐리우드 영화는 만들어졌지만 지금의 중동 전쟁은 9.11 테러? 종교 싸움? 국력 과시? 석유 문제? 후세가들은 무엇을 원인으로 하여 오늘의 전쟁을 다룰 것인가?

명분은 그렇다하고 아가멤논의 5만명 병사나 트로이의 수많은 전사는 칼과 화살을 무기로 싸우다가 머리에 피를 철 철 흘리는 치열한 육박전까지 벌이지만 죽을 때는 자신이 상대방보다 힘이 약해, 혹은 몸이 빠르지 못해, 어디를 다쳐서 등등 자신이 죽는 이유를 확실히 알고 죽는다. 그러나 오늘의 병사들은 대부분 어느 날 갑자기 날아온 미사일에, 자살 폭탄에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를 모른다. 어디가 전장인지도 모르고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다 자신이 죽어 가는 것도 대다수가 모르는 것이다.

어차피 인간으로 태어나 한번밖에 없는 삶을 살다 간다면 나고 죽는 것을 제대로 알고 가야 할 것이다. 또 하나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의 신화 일부를 따온 상업성 영화로 만들어선지 ‘트로이’의 등장 인물들은 하나같이 이성이전에 감상적이다. 작은아들이 데리고 온 적국의 왕비를 맞아들이고 아껴주는 프리아모스(피터 오툴)왕은 동생의 사랑을 지켜주려다 사망한 큰아들 헥토르(에릭 바나)의 시신을 찾으러간다. 한밤중에 적진의 아킬레스 막사로 직접 찾아가 아킬레스 발밑에 무릎을 끓고 ‘자식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눈물로 호소한다.(이는 호메로스의 시 일리아드에도 그대로 나온다).

이에 아킬레스는 그 부정에 감동하여 헥토르의 시체를 내준다. 그 낭만적, 감상적, 인간적인 면이 오늘날의 금속성이 번쩍 나는 차갑고도 냉랭하며 비인간적인 전쟁과 차별된다. 철옹성 트로이를 공략하기 위해 오디세우스의 아이디어로 트로이 목마가 등장하지만 오는 6월30일 이라크 과도 정부에의 주권이양을 앞두고 어떤 트로이 목마가 등장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한가지 있다.

수천년전 전쟁과 지금의 전쟁은 그 방식이 현저히 변했지만 변함없는 것은 인간의 끝없는 이기심과 욕심인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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