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매 달이 ‘가정의 달’

2004-05-2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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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녀(수필가)

지난 겨울은 퍽으나 지루하게 느껴졌다. 늦게까지 계속되는 추위 속에 눈꽃(스노우드롭)이 눈을 비집고 나와 뾰족이 얼굴을 내밀면서 봄이 곧 올 거라고 기쁜 소식을 전해주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봄이 왔다. 따사하고, 밝고, 살살 부는 바람을 맛만 보게 하고 지나가 버렸다.

정원의 꽃들이 어느날 하루아침에 만개하고, 갑작스런 날씨의 변덕에 며칠을 견디지 못한 채 꽃잎들이 다 떨어지고 시들어 버린다. 아쉬움이 말할 수 없다.


사람들도 기후에 적응하기가 힘들어 아침에는 어정쩡한 이른 봄 옷차림인가 하면 대낮에는 몇 겹의 옷이 다 벗겨지고 한여름의 옷차림으로 바뀌어 진다.

그런대로 철은 철이기에 이른아침 덜 깬 잠에서 일어나 밖에 나가면 온통 향기가 코 속을 간질인다. 아름다운 햇살과 더불어 사방에서 와지는 꽃내음에 눈을 스르르 감고 깊은 숨을 들이쉰다.

밤마다 잠깐씩 내리는 소낙비에 젖었던 땅에서 아침 햇볕을 반기며 슬며시 풍겨내는 흙냄새도 그럴듯 하고, 연하고 보드랍고 또 사랑스러운 각가지 색깔들도 마음껏 즐긴다.

오월은 만물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생동하기 시작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최대한으로 발산하는 달이다. 그래서 가족들이 오손도손 즐거웁고 생기 발랄하게 살아야 하는 가정을 연습해 보는 가정의 달이 오월에 있나 보다.

그런데 조물주가 가장 아끼고 아름다웁게 창조한 우리 인간들은 요즈음 슬픈 일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국가간의 이해관계로 여기 저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고 큰 전쟁들, 종교전쟁 또한 곳곳에서 끊일 줄 모르고 있고 아직도 기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가들이 있는가 하면, 잘 사는 나라들 또한 테러의 무서움을 피할 수 없고 이북의 용천 폭발사건이 가슴 아프게 하고, 모국에서는 정치인들이 하는 일들이 국민을 혼돈시키고...

이같이 세계 이곳 저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민을 와서 힘들게 살고 있는 미국 역시 세계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 일들을 곧잘 저지르고, 경제도 어수선하고 사회문제도 날이 갈수록 어두운 소식들로 우리들을 불안케 만든다.

정보의 홍수 또한 많은 이들의 자신감을 잃게 하고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문제가 없는 집안이 별로 없다. 모두 신경을 곤두세우고 사는 것 같다. 너그러운 마음 가지고 평화롭게 살 수 없는 세상이라면 인간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자연과만 더불어 살고 싶다는 유혹이 종종 마음속에서 꿈틀거린다.


어느 때 보다 불안정하고 어려운 시련을 많이 경험하고 있는 때여서인지 금년 오월은 다른 해들의 오월과 달리 온갖 미디어가 이 달이 가정의 달임을 더욱 강조하는 것 같다.

모든 일의 시작은 우리 인간의 생각하기에, 그리고 마음 먹기에 달렸고 우리 인간들의 생각을 좌우하는 능력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가정에서 키워지기 때문이리라. 아무리 과학이 발달을 해서 모든 일을 인조인간이 대행하는 시대가 온다해도 이런 모든 움직임을 프로그램화 하고 조종하는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갈수록 우리 인간의 생각과 마음가짐이 함께 사는 사회를 구성하려고 노력하는 우리가 되어야 함을 절실히 느끼게 한다.

가정의 머리인 부모의 말씀이, 부모의 행동이 자녀들의 인격 형성에 그대로 이어진다. 거울에 비치듯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기에 자녀들이 자랑스럽게 느껴지면 자신이 자랑스러울 것이고 자녀들이 부모된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그 싹은 부모인 우리에게서 뿌려진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춥고 을씨년스러운 겨울을 지나 봄이 되어 맞는 오월은 그지없이 아름답다.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기 위해 우리 다같이 특별히 노력하자고 서로를 돌보는 일을 경험해 보는 달이다.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날이 있고, 부모의 날이 있고, 부부의 날이 있다. 이런 날들을 우리가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그 중요성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오월만이 아니고 매일 매일의 생활에서 가정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가정의 달인 오월이 다 지나가는 지금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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