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사람을 잘 써야 한다

2004-05-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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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마다 연기자들의 분장이나 연기가 참으로 그럴듯 하다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보통 때는 그저 그런 사람인데도 극중에서 왕으로 나오면 정말 왕처럼 보이고 장군으로 나오면 당당한 장군처럼 보인다. 어떤 연기자는 한 드라마에서 왕으로 출연하고 다른 드라마에서는 머슴으로 출연해도 그 배역에 맞는 역할을 잘 소화해 낸다.

그러나 극 중의 어떤 배역을 아무나 맡는 것은 아니다. 연기자의 특성과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아무렇게 배역을 정했다가는 그 드라마나 영화는 실패작이 되고 만다. 대개 능숙한 연기자는 모든 배역을 잘 소화해 낼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의 내용은 몰라도 출연자가 누구인지만 보고도 재미있는 작품인지 아닌지를 금방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감독이나 PD가 배역을 잘 선정하면 그 작품이 절반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연기를 잘 하는 연기자가 배역을 맡으면 연기가 잘 될 수 밖에 없다. 작품이 작품으로서 성공하면 흥행에 성공하여 대박이 터지게 된다. 다시 말해서 좋은 연기자를 쓰는 것이 작품과 흥행의 성공 비결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정은 실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사는 이 사회에는 수많은 직업이 있고 사람마다 각각 다른 직분을 맡아 살아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정치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사업을 한다. 전문인 직업을 가진 사람도 있고 비숙련 노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사업을 하는 경우에도 사장이나 회장인 사람도 있고 종사원으로 일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웬만한 자격을 가진 사람이면 어떤 자리에 앉혀도 대체로 일을 감당해 낸다.

즉, 장관이나 국장 정도를 하는 사람이면 대통령 자리에 앉혀도 그럭저럭 일을 해낼 수 있다. 조그만 사업을 하는 사람도 국회의원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든지 일단 자리에 앉게되면 그에 합당한 책임과 권한이 주어지기 때문에 어깨에 그만한 힘이 들어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럴듯 하게 보일 뿐 아니라 그럴듯 하게 일처리를 하게 된다. ‘자
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헛말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아무 자리를 맡겨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드라마의 배역을 유능한 연기자에게 맡기면 드라마가 성공을 거둘 수 있고, 능력이 부족한 연기자에게 맡기면 실패작을 만들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실생활에서도 사람을 제대로 쓰느냐 못 쓰느냐에 따라 일의 성패가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단체의 장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단체가 활성화 될 수도 있고 지지부진할 수도 있으며 대통령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나라가 융성할 수도 있고 피폐해질 수도 있다.

사람을 제대로 쓴다는 것은 제 기능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쓰는 것이다. 병원에서 의사를 채용하는데 의학지식이 없는 사람을 쓸 수는 없다. 경제를 모르는 사람을 경제부처의 공무원으로 채용할 수도 없다. 모든 전문가들을 지휘 감독해야 하는 자리에는 최고의 전문가가 기용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은 각자 능력에 한계가 있으므로 지식과 경험, 판단력, 추진력 등 능력에 따라 알맞는 자리에 쓰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고위직에 올라갈수록 능력 뿐 아니라 사명감이 중요하며 특히 최고위직에는 철학적 식견이 필수불가결의 요소라고 할 수 있다.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공공인사나 사기업의 종업원 관리에서 논공행상이나 지역 안배를 중요시 하고 심지어는 정실이나 사적인 아부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함정에 빠지면 사람을 잘못 쓰게 된다. 지금 한국의 개각 파동을 보면 다분히 그런 우려가 없지 않고 한 술 더 떠서 정략적인 측면까지 보이고 있으니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제대로 된 인사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우리 한인들은 미국에서 크고 작은 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 사업의 성패 역시 사람을 잘 쓰는데 달려 있다. 능력 있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종업원을 쓰기만 하면 사업은 절반 이상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한 나라의 대통령을 뽑는데서 부터 구멍가게의 종업원을 쓰는 데까지 적용되는 일관된 법칙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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