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더러 고달픈 이민생활 한다는데

2004-05-2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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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한국에서 온 초청강사나 연사들은 별반 도움이 안되는 뜬구름과 같은 내용을 관념적으로 그럴듯하게 말하면서도 한결같이 우리더러 고달픈 이민생활을 한다고 동정어린 말을 서슴없이 한다. 글쎄, 정말 우리가 고달픈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게 아닐텐데, 미국에서 사는 우리들은 적어도 생활에서만은 희망으로 통하는 직선의 길인데 그걸 모르다니.

어디를 가 보아도 산이 좋으면 산봉우리도 좋고 산봉우리가 좋으면 그 산의 기개 또한 좋아 보인다. 이민이라는 글자는 어쩐지 나그네와 같다는 어감을 풍기기는 하지만 이민을 가서 생활하는 사람을 보면 세상 어디에서나 고국에서 서슴없이 하는 그 말대로 고달프게는 살지 않는다. 고향이 머니 조금은 외롭고 친지나 친구들을 맘대로 볼 수 없어 때때로 적적한 마
음은 있어도 생활을 하는데 고달프게는 살지 않는다.


한국에서의 몇몇 상식없는 부자들을 제외하고는 평균수치로 계산을 해 보아도 한국에서 사는 국민들 보다는 건전하게 잘 산다. 그걸 알아보지도 않고, 아니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어디서 들었는지 우리더러 고달프다 고달프다 하면서 한편으로 이민자의 위치를 은근히 격하 시키면서 이상한 위로를 하려 든다. 상식이 있는 연사라면 허구많은 말 중에 꼭 그런 말을 해야 하는지… 따지고 보면 마이크 앞에 선 그 유명인사의 내어놓을 수 없는 고국생활이 더 고달플런지도 모르지.

한국으로 잠깐 가 보자.서울, 부산을 비롯하여 기업들이 들어선 중소 도시마다 연일 데모다.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연일 뛰니 몇푼 안되는 월급으로는 도저히 살아낼 재간이 없어 일들은 안 하고 데모에 열을 올린다.

거품경제인 줄도 모르고 소비가 아니라 낭비에 신들렸던 사람들, 한국의 아름다운 연안에 지천으로 자리잡고 있는 섬들을 다 외면하고 괌이다 피지다 하면서 남태평양을 자기네 집 뒷마당처럼 헤집고 다니던 젊은이들, 우리가 그들에게서 무슨 애국을 읽어내릴 수가 있으며 나라를 짊어지고 갈 무슨 미래의 희망을 걸어볼 수가 있을까?

누구네 집에 김치냉장고가 있다면 쓰지도 않을 김치냉장고를 빚을 내서라도 들여놓고 “너만 있냐?” 하면서 입맛 쓴 경쟁심에 만족하려 드는 가정부인들에게서 무엇을 밝게 읽어낼 수 있을까?

보신에 열을 올리면서 남자들이 찾아가는 태국의 방콕, 그들에게서 무슨 믿음을 읽어내릴 수가 있을까? 이러한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대한민국, 국가 경제가 불안하고 가정경제가 불안하니 우선에 챙기고 보자라는 전국민의 의식은 어디에다 감추어두고 미국에만 오면 우리더러 고달프게 사느니, 말도 못할 고생을 하느라고 얼마나 힘이 드느냐는 등, 생각도 해보지 않고 비교도 해보지 않고 눈을 맑게 뜨고 있는 우리에게 서슴없이 말을 던진다.

세상 어디에나 빈북의 격차는 있으나 평균을 따져볼 때 과연 대한민국 국민이 잘 살고 있을까 이민을 온 사람들이 잘 살고 있을까? 이민자를 겉으로 깔보고 속으로 부러워하는 동포들.

만리타향으로 이민온 우리에게 그리움은 있지. 그리움이란 인간정서의 가장 화려한 서정이란 것을 초청연사들은 왜 모르고 있는지. 또한 그리움은 사랑의 전초기지이며 사랑의 마지막 보루인 것을 왜 모르고 있는지. 우리에게 그런 그리움은 있지만 살기가 고달프거나 고생이 막심하여 힘이 들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 또한 왜 모르고 있는지.

빈자의 담장 안에서는 박사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지만 부자집에 기거하는 사람이라면 나그네까지도 잘 먹고 잘 잔다. 대한민국 전체 국민이 어느 누구네 보다도 잘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삼신할매에게 까지도 빌어주고 싶은 마음이 우리들인데 우리더러 고달프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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