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명문대가 전부 아니다

2004-05-2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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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매년 이맘 때가 되면 명문 대학 입학생과 졸업생에 대한 뉴스가 한인사회를 장식한다. 물론 이들이 소수민족으로서 남의 나라에 와 명문인 하버드나 예일, 프린스턴 같은 아이비리그 대학에 들어간다는 건 박수를 받을 일이다. 그러나 이들의 비율은 한인전체 학생들 중 거의 10%도 안 되는 숫자에 불과하다. 그러면 아이비리그 대학에 못들어간 나머지 90% 학생들
의 경우 뭔가 부족하고 학생으로서 그들만 못하다는 뜻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명문대학에 못간 학생들 가운데는 누구보다 똑똑하면서도 가정 형편을 고려해 명문대에 안 간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또 단순한 학교 명성보다는 전공학과 등 여러 이유로 보아 훨씬 더 장래 전망이 나을 수 있는 젊은이들도 많이 있다. 이들은 명문대학에 간 학생들 보다 대학생활을 훨씬 더 잘 하고 나름대로 전공을 살려 졸업 후 명문대학 졸업생보다 더 좋은 직
장으로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반면 입학은 명문대학에 했어도 적응을 잘 못해 도중에 탈락하거나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진급이 유보되는 경우도 있음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잘 알지 못하는 한인들이 덮어놓고 ‘명문’ ‘명문’하면서 분위기를 몰고 가는 예가 없지 않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명문대에 진학하는 학생들 못지 않게 원대한 꿈을 가진 다수의 다른 학생들의 사기가 걸린 문제이다. 이제 갓 이민와서 몇 년 안된 아이들이 아무리 한국에서 공부를 잘했다 하더라도 아이비리그를 바라보기에는 천재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대의를 반영해야지 불과 몇 명 안 되는 숫자에다 목표를 맞추고 떠들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설사 명문대에 입학한 경우라도 그 때부터 10년 후를 봐야지 들어간 것만으로는 속단하기가 어렵다. 하버드 같은 대학에 입학했다가도 많은 학생들이 도중에 못 따라가 다른 대학으로 옮기거나 전공을 바꿔 다시 시작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이 없어 실력은 있는데도 가정 형편을 생각해 명문 사립대를 포기하고 주립대나 시립대학에 갔어도 오히
려 명문대학을 진학했던 학생들보다도 더 잘 된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므로 교육은 당장의 좋은 학교 진학과 졸업만으로는 쉽게 평가할 일이 못된다.입학해서 무사히 4년을 다 치르는지도 중요하고 명문대일지라도 졸업 후 모든 장래가 다 보장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길게 봐야 할 일이다. 이들 중에는 ‘말 글로 배워 됫글로 써먹는다’고 오히려 주립이나 시립대를 나온 아이들보다 더 못한 사회인이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명문대 졸업생 경우 보이지 않게 갖고 있는 최고 의식이나 자만심 때문에 사회에서나 직장에서 주위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례가 있다. 그러므로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얘기할 게 아니라 크고 길게 보는 안목과 시야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한인부모들이 유명세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 자녀를 명문 사립대에 보내놓고는 대학등록금과 장래성이 있는 전공 선택, 그리고 졸업 후 자녀의 취직 문제 때문에 고통받는 경우를 주위에서 많이 본다.

한 예로 명문 사립대에 다니는 자녀에게 매년 수만달러씩 학자금을 대줬는데 그는 졸업 후 마땅한 취직 자리 하나 없이 집안에서 딩굴고 있다. 그리고는 또 대학원에 가서 공부하겠다고 돈을 달라고 한단다.

이런 사실을 감안할 때 이제는 무작정 자녀를 명문 사립대에 진학시키는 문제도 좀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걔중에는 평생 공부를 요구하는 연구직업이나 교수를 하기 위해 공부를 계속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들을 제외하고는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값비싼 명문 사립대에 보내놓고 이래저래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러나 사립대의 20%도 안 되는 주립이나 시립대학을 나오고도 수요가 많은 전공과목을 공부해 오히려 명문대학에서 공부한 학생보다 더 취업이 잘되고 사회생활도 잘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다. 물론 본인의 장래 계획이 뚜렷하고 부모가 능력이 있거나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학생 경우 얘기가 다르다. 그렇지 않은 경우 굳이 명문대를 고집할 필요가 있겠는가.

세상에는 명문이 아니고도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훌륭한 인물이 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대학이란 입학이든, 졸업이든 이제 갓 시작하는 인생의 첫걸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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