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잊혀진 세월 속에 나를 찾으며

2004-05-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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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수필가)

일본 여행을 혼자 갈 수 있었던 것은 9.11 때 만났던 재일동포 여인 때문이었다. 우리가 만난 것은 몇년 전 2001년 9월, 한국에서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에 테러사건이 터졌고 그래서 지구본에서도 제일 꼭대기인 캐나다 뉴콘에서 3일 동안 억류되면서 알게 된 여인이었다.

그 후 우린 편지로, 전화로 연락을 취하면서 서로의 정을 주고 받았기에 나는 언젠가 고국을 방문할 때는 일본을 꼭 다녀오리라 생각했는데 지금에사 이룬 것이다.


친구 덕분에 우에노 공원 근교에 백년이 넘은 정통식 일본 여관에 짐을 풀고 이곳 저곳 마을을 다녔지만 웬지 낯설지가 않고 마치 내 고향에 온 느낌이 들었다.

아니 방금 전 한국에서 왔고 그리고 나리타 공항에서 한시간 반을 달려 상야에 들어섰는데 내 고향 서울보다 더 친근감이 드니 웬일일까 싶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태어나서 일곱살 때까지 살았던 신당동 골목길이었다.

그렇다고 그 당시 7살 나이에 무엇을 기억하리랴만은 그래도 분명 낯설지 않은 게 1923년 대지진 때는 물론 1945년 2차대전 때 유일하게 우에노 공원 일대가 폭격을 맞지 않아 옛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람도 살지 않지만 잘 보존되었고 곳곳에 허름한 집들을 나같은 관광객 몇 명이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이튿날 대중탕인 여관에 딸린 온천에 들어가니 젊은 엄마가 딸아이를 품에 안고 탕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문득 내 어릴적 기억을 되살리게 했다.

아이는 긴장되는지 엄마 품에 꼭 안겨 탕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안정을 찾으며 이찌니 산시 노래를 불렀다. 그렇듯 내 어린 시절에도 어머니는 목욕탕에 가면 나를 품안에 안고 들어갔고 그럴 때마다 무언가 노래를 부르셨는데 그 중에서 이찌니 산시 조로코 노래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게 바로 일이삼사였는데 나는 그게 그저 그렇게 부르는 노래인지 알고 지금도 이찌니 산시, 아에우오우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절, 나는 6.25사변이 일어나기 직전 초등학교를 입학하려다가 아직 달수가 덜 찼다고 퇴자 맞은 기억 뿐이 안 나는데 이렇듯 숨은 기억들이 토막토막 되살아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치 내 고향에 온 것처럼 새벽부터 우에노 공원 근처를 두루 다녔고, 공원 광장에서 하는 국민보건체조도 따라 하고 이왕 나선 김에 친구가 말한대로 저 길로 쭉 가면 동경대학이 나온다는 말만 듣고 무작정 거리로 나선 것이 잘못된 것이다.

동경대학은 잘 찾아갔지만 여관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전화기도 없고 주소도 모르고, 일본말도 할 줄 모르고 정말 낙망했는데 마침 옛날 어머니가 일정목, 이정목 하시던 생각이 났고 내가 투숙한 여관이 2정목이구나 하던 생각이 나서 무조건 숫자가 적은 방향으로 걸어가니 정말 내가 투숙한 여관이 나왔다.

그렇게 해서 길을 찾았지만 왜 나는 고향인 한국에서 내 고향의 정취를 못 느끼고 하필 일본에서 향수를 느끼는가 하는 생각으로 온 날을 지내야 했다.

그렇듯 일제 자동차를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즐기다 못해 호화판으로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데 오히려 그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보도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가, 그래서 일본 국민은 가난해도 나라는 부강하고, 우리나라는 최고를 달리는 부자는 많지만 나라는 가난한 이유가 바로 그런 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나를 당혹하게 한 것은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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