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침의 고요 vs 저녁의 고요

2004-05-2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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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정(회사원)

인도가 낳은 위대한 시인 타고르(Tagore)는 당시의 한국을 고요한 아침(Calm Morning)이 아니라 아침의 고요(Morning Calm)라고 표현했었다. 저녁의 고요(Evening Calm)가 곧 어둠이 깔리고 모든 것이 정지되고 절망과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기 직전의 고요라면 아침의 고요는 잠시 후면 대지 위에 찬란한 햇빛이 비추어지고 모든 생명들이 잠에서 깨어나 약동하기 직전의 고요, 즉 빛과 희망이 먼동과 함께 서서히 걸어오고 있는 상태의 고요인 것이다.

시로서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한 당대의 최고의 시인 중의 한 사람이었던 그는 당시의 평화롭던 농경시대의 한국을 보고서 나름대로 최고의 희망적인 표현을 해 준 것이다. 그러던 그 역시 인간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1941년 80세의 일기로 타계하고 만다.


그로부터 4년 한국의 대지 위엔 해방과 함께 태양이 떠오르긴 떠오른다. 하지만 마디 마디 꼬이는 민족의 기구한 운명 탓인지 북쪽의 반은 가리운채 남쪽의 반만 비추는 마치 부분일식과도 같은 태양이 떠오른 것이다.

만일 그가 살아서 이런 민족의 슬픈 역사를 목격했더라면 ‘반은 아침의 고요요, 반은 저녁의 고요로다’라고 설파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이 지구상에서 살고 간 수많은 영혼들, 그리고 현재에 살아가고 있는 65억의 인간들을 분류하면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이 세상에 꼭 태어났어야만 했던 사람들이다. 둘째는 이 세상에 태어났어도 그만 태어나지 않았어도 그만이었던 사람들이다. 셋째로는 이 세상에 절대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생명들이다.

인류역사의 시작 이래 현재까지의 이 분류에 속하는 많은 인간들 중에서 특히 역사에 기록을 남긴 소위 스타급들만도 많다.오스카상이 각 부문별로 나누어 수상하듯 만일 저승에서 염라대왕이 하사할 지도 모르는 상패를 각 부문별로 나누어 시상한다면 즉 최고 잔학상, 최고 몰염치상, 최대 공포상 등등 이 중에서도 우리가 낚시대회에서 고기를 가장 많이 잡은 사람에게 주는 다어상(多魚賞)에 해당하는 이승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잡은 ‘다인상(多人賞)을 누가 받을 것인가는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혹자들은 얼른 생각에 유대인만도 600만을 죽인 독일의 히틀러가 이 ‘상’ 만큼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만일 한민족의 자손인 김일성이 일어나서 ‘지금 현재까지의 숫자는 열세일 지 모르지만 질적인 면에서 나는 타민족이 아닌 동족을 죽였다.

또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나는 뒤로 내보다 훨씬 더 독한 자식이 지금 핵폭탄을 만들고 있으니 두고 봐야 한다. 나의 게임은 결코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면 웅성대던 장내는 금방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질 것이 뻔한 것이다. 이럴 때의 고요는 아침의 고요, 저녁의 고요도 아닌 것은 분명하다.

‘저승의 고요’라고 할까 아니면 ‘최후의 고요’라고 할까 만일 ‘타고르’가 살아 온다면 한번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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