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일제가 남긴 상처

2004-05-1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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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수(취재부 부장대우)

지난주 열린 뉴욕한인여성네트워크 창립 1주년 기념식의 초청연사 이해경 옹주는 한국에서 살기 지겨워서 미국에 왔다고 했다.

‘나라를 팔아먹은 왕조의 핏줄’이라는 차가운 눈초리와 6.25전쟁을 겪고 나서 몰락한 왕족이 한집에 모여 살면서 학교에서, 집에서, 또 집밖에서 겪는 스트레스를 견디기가 힘들었다. 결국 쓰던 피아노를 판 돈으로 비행기 티켓을 구입해 미국에 유학 왔다.


아마도 미국에 이민 온 한인중에도 이해경 옹주처럼 다른 이유 또는 같은 종류의 이유 때문에 한국이 지겨워서 떠난 경우가 있을 것이다.이 옹주에 따르면 그녀의 아버지인 의친왕은 20명의 자녀가 있었다. 이들은 모두 배다른 형제로 궁중에 살 때 탈도 많고 싸움도 많았으며 이 옹주 자신도 13세가 될 때까지 생모를 모르는 채 살았다고 한다.

의친왕은 고종의 다섯째 아들로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에게는 이복동생이다. 한국에서 종영됐던 명성황후를 보고 마음 상했다”는 이 옹주는 “대비들은 남편을 잃었다는 죄로 무늬가 없는 남치마에 옥색저고리만 입었다. 요즘 사극처럼 화려한 생활은 전혀 없었다”는 등 자신의 기억속에 남은 왕족의 생활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1956년 미국에 유학와 텍사스 메리하딘 베일러 여대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컬럼비아대 동양학 도서관 한국학 사서로 일하며 지금까지 싱글로 지내오고 있다.

사서로 일하며 미국에 남겨있는 부친 의친왕의 항일구국 행적을 찾아내 왕손이 지닌 역사관과 의친왕의 새로운 면모를 알려주고 있다.고희의 나이에 들어선 이 옹주의 강연을 듣고 나서 애국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즉 애국심은 한민족의 우수한 면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고 힘든 역사를 껴안고 다시는 그런 어려움을 후세들에게 물려주지 않게 지혜로운 선인으로 남는 것이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 옹주가 겪어온 지겨운 고통이 그녀만의 고통이 아닌 우리 민족이 함께 위로하고 감싸 안아야 할 고통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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