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칼로 물 베기

2004-05-1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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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편집위원)

원앙(鴛鴦)은 ‘금슬 좋은 부부’를 상징하는 새이다.
원(鴛)은 수컷이고 앙(鴦)은 암컷이다. 원앙은 다정하기로 이름나있다. 일단 짝을 맺으면 떨어질 줄 모른다. 함께 날고 함께 헤엄친다. 심지어 서로 목을 꼬면서 잠을 잔다. 또 짝이 죽으면 수절한다. 어떤 것은 상심한 나머지 먹지 않고 굶어 죽는 것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원앙을 짝 새라고도 한다. 원앙은 금실 좋은 부부의 상징이다. 그래서 베개나 이불에 원앙의 형상을 수놓기도 한다.

원앙지계(鴛鴦之契)는 원앙은 자웅이 언제나 붙어 다니고 떨어지지 않는데서 나온 것으로 금실이 좋은 부부를 두고 하는 말이다. 다정한 부부를 의미하는 성어로는 금실상화(琴瑟相和)와 금실지락(琴瑟之樂)도 있다. 이는 ‘거문고와 비파를 함께 연주함으로써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 뜻으로, 단란한 부부 사이를 비유하는 말이다.


화목한 부부나 남녀 사이를 일컫는 성어로는 비익조(比翼鳥)와 연리지(連理枝)가 있다. 비익조는 암수의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라서 짝을 짓지 않으면 날지 못한다는 중국의 전설상의 새이다. 연리지는 ‘나란히 붙어 있는 나뭇가지’를 뜻한다. 곧 뿌리가 다른 두 그루의 나무가 사이좋게 합쳐진 가지가 연리지이다. 이처럼 비익조와 연리지는 모두 그 말이 가져다주는 이미지와 같이 남녀간의 떨어지기 힘든 결합이나 부부의 애정이 지극히 깊음을 뜻한다.

사랑으로 맺어진 남녀의 결합은 인간생활에 있어서 겪는 중대한 일로 인륜대사라고 한다. 백년가약은 남녀가 부부가 되어 평생을 함께 하겠다는 아름다운 언약이란 뜻이다. 한번 맺은 부부의 인연은 일생을 두고 지키는 가장 아름다운 언약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부부들이 너무 쉽게 헤어지는 것이 요즘 세태가 아닌가 싶다.

흔히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말한다. 아무리 베어도 물은 자신의 형태를 유지할 뿐 어떠한 상처도 남지 않는다. 그러니 부부간에는 싸움도 ‘애정의 표현’이란 뜻일 게다. 때문에 부부싸움을 골백번 하더라도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화해하고 금방 ‘하하’대고 웃으며 다시 잘 살아가는 부부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부부싸움을 하면 사네 안 사네 하다가 결국 헤어지는 경우도 제법 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표현은
옛말일 뿐, 이제는 ‘부부싸움은 칼로 무 베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무 썰 듯 쉽게 갈라서는 게 부부가 됐으니 말이다.

가정의 달인 5월의 둘(2)이 하나(1)가 되는 21일은 부부의 날(?)이라고 한다. 가정에서 부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볼 때 매우 좋은 날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옛말과 달리 ‘물도 얼면 베어진다’는 요즘 세태가 오죽했으면 그런 날이 생길까하는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래도 아직은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부부 싸움은 누구나 다 한다’라고 말을 하면 아무도 잘못된 말이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부부 싸움을 하면 다 헤어진다’라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런 엉터리 말이 어디 있느냐고 할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이혼이 흔하다고 해도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혼한 입장에서 볼 때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부부란 그 누구보다도 서로의 결점을 잘 아는 사이다. 때문에 부부싸움에서 결점을 내 세우다보면 싸움이 악성화 되고 위험수위를 넘어서기 마련이다. 때문에 서로의 결점을 잘 알면서도 말없이 포용하고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처럼 아내의 잔주름을 부드럽게 만져줄 줄 알고 하얗게 변해 가는 남편의 머리카락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마음이야말로 원
앙지계, 금실지락 등을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비결이 아닐까 싶다.

부부의 문제는 세상에 존재하는 부부의 수만큼 다양하다는 말이 있듯, 한인가정도 나름대로의 이유로 부부갈등을 겪고 있을 게다. 그러다 보면 부부싸움도 하고 싸움으로 인해 헤어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서로의 결점을 감싸주고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있는 한 결국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일 뿐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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