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후를 건강하게

2004-05-1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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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일(성은장로교회 장로)

요즘 한인들을 보면 건강하게 살자면서 운동을 시작하며 새로운 삶에 참여하자고들 한다. 그런데 한 가지가 빠져있는 것 같다. 건강해서 어쩌자는 것일까.건강하면 자연히 오래 살아야 하는데 자식들에게, 친구들에게, 친척들에게 추한 꼴 보이지 않고 여생을 살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인가, 라고 자신에게 물어보자.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90년을 살면서 자신의 여생을 충분히 준비한 분들도 많다고 한다. 반면 자신의 여생을 구호기관에 의지해야 하는 삶들도 적지 않다. 또 위의 두가지 여건을 다 즐기는 부자들도 있는 것 같다.


나는 가끔 미국인들 전용 고급 양로원에 방문을 하는데 제일 좋은 시설에서 여생을 보내는 노인들의 태반이 유대인들임을 보게 된다. 그들은 자신이 잘 살던 때의 모습 그대로 방을 꾸며놓고 산다. 주말이면 자식, 손주들이 번갈아 찾아오고 못 올 경우 선물을 보내오고 카드도 보내온다.

일년이면 한 번씩 그룹이 되어서 한달씩 크루스 여행을 다녀오곤 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어두운 곳이 있다. 준비가 잘 안 된 노인들이다. 이들이 새 건물의 화려한 로비에 나왔다가는 큰일난다.

부자(?)들이 불평을 하고 난리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은 모두 젊고 아주 상냥하다. 모두 천사처럼 보인다.그런데 이 부자들이 모인 곳에서도 직원들에게 왕따 당하는 부자들이 즉 직원 한 명 정도를
자기의 부하로 만들 만큼 투자 여력(?)이 없는 약한 부자들이다.

이들에게 가해지는 압력은 로비에서부터 시작된다. 배달된 물품이 로비 데스크 아래에 던져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우 받는 사람의 물품은 데스크 직원이 보물처럼 책상 위에 모셔 두었다가 본인에게 큰 웃음과 더불어 두 손으로 공손히 전달 된다.

또 자손들이 들렸다 갈 때 약간의 인사가 따른다. 제일 큰 인사의 계절은 양로원에서 맞는 어머니날 행사이다. 이 날은 직원들이 계 타는 날이라고 한다. 그리고 생일날에 받는 선물,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의 선물(?)은 기절할 정도의 선물이 전해진다. 왜냐하면 이 선물의 기준으로 그 노인의 새해 일년 동안이 편할 것인지 아닐 것인지의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돈 없이 자식이 부담하는 기본 비용으로 머물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은 정말로 불쌍하다. 그런데 혼자된 이들은 그저 불쌍하다고 생각되는데 늙은 부부 둘이서 휠체어에 앉아 보자기 만큼 햇볕이 드는 구석에서 둘이 손을 붙잡고 멍하니 앉아있는 모습은 보기에도 안스럽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처럼 하얗게 탈색되었다가 이제는 누렇게 변한 머리칼의 힘없는 모습에서 저 두 노인의 머리 속에서는 빛 바래고 편집도 되지 않은 과거의 단편기록영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더욱 마음이 아프다. 저렇게 힘없이 누구도 찾아보는 이 없이 잊혀져 가는 인생의 모습이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외롭지 않은 삶이 있을까? 두렵지 않은 삶이 있을까? 가슴 메어지는 슬픔을 넘기지 못하고 목에 달고 다니는 아픈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되어지기를 하늘에게 구한다. 노인들의 가슴에서 후회 때문에, 아픔 때문에, 사랑이 그리워서, 손주들이 보고싶어서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의 강이 멈춰지는 날은 없을까. 건강한 영혼, 건강한 육신을 지키는 것은 자신의 몫으로서 준비를 얼마나 오래 하였나에 따라 얻어지는 귀한 투자임을 배우게 한다.

우리 모두 늙게 마련이다. 사랑을 나누는 지혜가 생활화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우리 주위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면 한다. 우선 우리 가정부터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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