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골프 아빠

2004-05-1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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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옥(전 고교 역사교사)

근래에 주말이면 공원이나 동네 놀이터에서 유니폼을 입은 여아들이 정식 심판을 두고 축구경기를 갖는 모습이 지나는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예전의 미국같으면 아무렇게나 걸쳐입은 사내아이들이 모여 야구방망이를 흔들거나 붙잡기 힘든 미식축구공을 가지고 뛰는 모습만을 볼 수 있었던 곳을 금발의 여아들이 몽땅 차지해 축구공 한 번 차보려고 20여명이 몰려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이런 풍경 뒤에는 물통을 하나씩 들고 열띤 응원을 하는 어머니들이 도사리고 있는데 언젠가부터 그들에게 붙여진 이름은 ‘싸커 맘’이다. 현재 세계 최강팀의 하나인 미국 여자 축구팀이 태어나게 된 뒤에는 한국의 ‘치마바람’에 해당되는 이런 극성스런 ‘싸커 맘’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올림픽경기를 포함한 모든 스포츠가 근래에는 상업화 되면서 운동경기 선수들이 명성과 함께 엄청난 액수의 돈을 벌어들이는데 이는 그리 놀랄 일이 못된다.

미국 프로농구선수들의 평균 연수입이 500만달러나 된다는 사실은 운동선수가 되는 것이 개인과 부모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1인 사업체로써 해 볼만한 직업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여자축구선수들은 수입면에서 보잘 것 없으나 그래도 싸커 맘들은 휴일이 되면 자식들에 꿈을 심어주기 위해 애들을 데리고 동네 운동장을 찾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어머니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끈질긴 노력과 의지에 의해 키워진 운동선수들이 활약하는 분야가 프로 골프이다. 수입 면에서는 다른 경기 선수에 비해 떨어지나 세계 선수들이 거의 매주 갖는 PGA나 LPGA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는 유명 선수들이 아버지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데 그 예외가 드물다.

주말 골퍼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장타나 절묘한 샷의 묘미를 보려는 갤러리들에게 LPGA는 큰 관심을 주지 못해도 올해는 무려 20여명이 넘는 한인 낭자들이 몰려 함께 뛰고 있어 대회 자체가 온통 한국여인들 판이 되어버렸다.

박씨 성을 가진 몇 선수와 떠오르는 미래의 골프여왕 등 이들 세계 최고급 선수들이 아빠에 의해 손에 클럽이 쥐어지고 아빠에 이끌려 골프장을 찾게 되었다는 것은 퍽으나 흥미있는 일이다.이들을 일컬어 ‘골프 댓’(골프아빠)이라 하겠는데 넘쳐나는 한인 ‘골프아빠’에 비해 무슨 이유에서인지 미국 아빠들은 딸들을 햇살이 이글거리는 골프장으로 밀어내기를 무척 꺼려 한다.

미국 기업들이 내는 상금으로 치러지는 대회에 젊은 백인여인들이 우승함으로써 LPGA의 발전을 기대하는 집행부 임원들의 머리는 그래서 더욱 어지러울 수 밖에 없다.

성공한 사람들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은 그들의 능력이 남달라서 보다는 실수 투성이의 아이를 인도한 아버지의 열정이 있었기 때문인 경우가 흔하다. 취향으로 상대의 신호에 동의하기를 거부하는 자식들이 또다른 매력적인 현실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하는 아빠의 의식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재산 증식에 왕성한 식욕을 가진 최고경영자나 Tycoon이 될 수 있도록 길을 찾아주고 영감을 심어주는 아버지가 한인가정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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