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정의 달 5월에...

2004-05-0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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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렬(건축가)

“내가 왜 이러는 줄 몰라/이러는 내가 싫어” 유행가 가사지만 정확한 표현이네. 내 마음 나도 모를네라. 즐거움도 내 즐거움이요, 괴로움도 내 괴로움, 모든 게 다 마음의 장난일세. <첩이 첩 꼴 못 본다>는 속담도 그렇다네. 나도 첩인데 첩 꼴 보려니 내 꼴 보는 것 같아 싫은거라네. 이렇듯 자기중심적인 존재가 인간이라네.

서로를 허무는 일에 익숙한 삶, 어려움과 혼돈에 쓸리는 삶, 공허한 만남과 헤어짐을 되풀이하면서 가까운 사람들과의 멀어짐을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 산다는 것 자체가 이런 것들의 연속, 사는 일이 얼마나 썰렁하면 ‘마음 붙이고 산다’는 말을 만들었을까.


“사랑한다는 것은 둘이 서로 들여다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쳐다보는 것” 가족은 누구도 어쩌지 못할 애증으로 얽힌 관계, 서로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상처를 가장 많이 받는 불가사의한 관계, 5월의 커튼을 열면서 생각나는 말이라네.너의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너와 나의 친밀한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네. 여백이 있음에 수묵화가 운치가 있듯이 부부, 가족간에도 아름다운 여백을 남겨둬야 한다네.

지나친 기대를 서로에게 걸면서 나의 모든 기대치를 다 걸어도 되는 관계가 ‘가족’이라는 치명적 오해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우리들, 네가 완벽하기를, 내가 채우지 못한 것을 대신 채워주기를 무의식적으로 기대하면서 살아가는 너와 나.

기대치가 큰 만큼 실망과 분노, 피해의식도 그만큼 커질 수 밖에 없거늘,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거는 기대처럼 가족간에도 현실이라는 안경을 끼고 살아야 한다네. 너와 내가 서로 잘 보이려고 어느 정도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허물어질 수 있는 관계임은 분명하다네. 산다는 건 이렇듯 힘든거라네.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을 다 표현해도 되는 사이가 부부요, 부모요, 자식이라 생각하기 쉽다네. 여과 없이 가족에게 심한 화살을 퍼붓고 몸에 걸친 옷 뿐만 아니라 마음의 옷까지도 홀랑 벗어버린 채 서로를 드러내어서 더 크게 상처받고 더 많은 피를 흘려서는 안된다네.가정도 하나의 사회, 결혼생활에도 최소한의 가면은 필요한 것, 감정의 수문을 활짝 열었다가는 자칫 뚝까지 무너져버릴 위험이 있다네. 남들과의 관계 때처럼 예의의 옷을 입고 입술의 긴장을 풀지 않으며 삶의 기술로 꿰어가야 한다네.

감정을 억압하고 내색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사나이 다운 행동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라온 우리들, 감정표현에 서툰 건 고사하고 감정의 위력까지도 무시하면서 살아오지나 않았는지? 감정은 행동의 주인이라는 걸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네.

불안이나 우울, 분노로 상대방이 다가올 때 그것들의 주인의 모습을 찾아내어 화내기 보다는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애씀은 물론 공감과 위로까지 건네주어 상대방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마음이 들게까지 노력해 보았는가? 자신의 감정이 이해받은 것에 감동받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런 감동은 대개 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로 이어지는 기적(?)으로 나타난다네.

인간이란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불행해질 수 있는 존재라네. 무심코 내뱉은 말 한 마디, 사랑의 계절, 가정의 달 5월이라네. 가족간에 매였던 것 있으면 서로 풀어주고, 새 출발 해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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