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왕자 엄마와 공주 아빠

2004-04-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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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리버티뱅크)

어느 경기이건 8강, 4강 하는 ‘토너먼트’ 경기방식은 시합 한 순배 돌 때마다 절반씩 탈락하기 때문에 맨 나중엔 두 팀만 남아서 결승전을 치룬다. 시대적 조류인지 모르겠으나 요즘 뿐만 아니고 벌써부터 한국의 신혼부부들의 자녀 출산계획을 들어보면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는 인왕산 호랑이 태평가 부를 때의 얘기이고 요사이는 하나만 낳고 단산한다니 이 추세대로 간다면 몇 세대 후에는 이 나라가 문 닫는 것 아닌가 걱정 아닌 걱정이 고개를 든다.

둘이 결혼해서 하나만 낳고 세상 떠나면 결혼 일세대마다 장수하는 소수의 노인을 제외하곤 인구가 절반씩 줄어드는 ‘토너먼트’식 인구 감소의 공식이 적용될 터인데 수리(數理)에 아둔한 필자의 원시적 산술법으로 기우이길 바랄 뿐이지만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고 이악스러워 단지 키우기 힘든다는 이유로 하나밖에 없는 자녀가 훗날 장성해선 부모도 저 세상 사
람이요, 형제도, 조카도 하나 없는 천애 고아가 되어 외루움에 치를 떤다면 그 부모가 책임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를 하나만 낳다 보니 세상이 온통 왕자와 공주 뿐이요, 평민의 자식은 없으니 소꼽장난도 이뤄지질 않는다. 미운 자식은 떡을 주고 고운 자식은 매를 들어 키우라 했는데 왕자나 공주로서 받기만 하고 주는 것을 모르고 자랐으니 무엇이 옳고 그른지 비교, 분별할 능력이 있나, 사랑과 이해심으로 양보를 할 줄 아나, 난국에 처해서는 합심 협동하는 법이라도 배웠
어야 하는데 태생적으로 그런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이들 자녀들의 인간성이 과연 이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을까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한 국가의 동량을 길러내는 학교 내의 폭력이나, 사제(師弟)관계의 파괴와 극단화 현상은 인성교육의 부재나 결함에 기인하는 것이니 아이들 기 죽지 않게 키운다고 예의범절은 약에 쓰려해도 찾을 수 없을 만큼 버릇없이 키워놓은 밴뎅이 부모들의 책임이란 사실을 뼈에 새기게 될 것이다.

더더욱 한심스러운 것은 그렇게 버릇없이 키운 엄마일수록 자식이 조금만 야속하게 느껴져도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면서 가슴을 치지만 후회는 아무리 일찍 서둘렀어도 이미 늦은 것이다.

시작이 아무리 늦었어도 이른 것과 반비례해서... 독일의 실존주의 작가 ‘카프카’는 “아이로부터 감사받기를 기대하는 부모는 이자를 받기 위해 투자하는 고리대금업자와 같다”고 했다.

모든 부모가 똑같지야 않겠지만 아들은 마마보이가 아니면 황야의 무법자로, 딸은 ‘양귀비’란 착각 속에 ‘신데렐라’증후군에 걸리게 해 놓고서 이웃과 사회가 악(惡)이라고 침을 튀긴다.

장자(莊子)의 얘기 조금 더 들어보자. “부부는 옷과 같아서 낡거나 찢어지면 바꿔 입는다. 그러나 형제는 팔과 다리와 같은 것이어서 끊어지면 이을 수가 없다’(手足斷處難可續)고 했다. 이는 가족 구성원 가운데 형제나 자매의 존재성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는 것이며 이 얼마나 애틋한 형제애인가.

세상 인심이 각박해서 남만도 못한 형제들이 많지만 기가 막힐 만큼 엄청난 일을 당했을 때, 그래도 머리를 맞대고 의논할 사람은 형제 밖에 없는 것이다.

비록 평상시엔 소원한 관계였다. 하더라도... 국력이 인구 수에 정비례 하는가는 알 수 없지만 인구 대국인 중국이나 인도가 초강국 미국의 상대(Counter-Part)가 되고 정보산업 ‘소프트웨어’에서 미국을 앞지르는 것을 보면 우연은 아닐 것이다.

티격태격 살을 비비며 살아온 형제 자매들은 육신이나 정신적 교감으로 인간애에 바탕한 정서와 논리적 사고(思考)도 반탄핵 데모를 묻는 기자 질문에 “노대통령이 불쌍하잖아요”라는 명답도 내지 않고 촛불시위로 반미 데모를 하면서도 이민(移民)만은 미국으로 가겠다는 이율배반은 하지 않는다.“형아야 누나야 강변 살자” 하면 소월이 투정하면서 긴 잠 깨어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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