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60, 70세대의 고려장

2004-04-28 (수)
크게 작게
곽건용(커네티컷)

옛날 어느 시골에서 한 아들이 병든 노친 아버지를 지게에 짊어지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산 깊숙히 들어갈수록 숲이 우거지고 나무가 무성하여 지게 위에 앉은 아버지는 나무잎을 뜯어 오솔길에 뿌리기 시작하였다. 계속하여 나뭇잎을 길거리에 뿌린 아버지는 “험한 산길을 내려갈 때에 길을 잃지 말고 나무 잎을 따라 내려가 무사히 집에 가기를 바란다”고 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였다.

가져온 며칠 분의 음식을 아버지 옆에 내려놓던 아들은 아버지의 이 말을 듣는 순간 스스로의 불효한 마음을 깨닫고 아버지를 껴안고 울면서 용서를 빌었고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왔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가 근대사회에서는 하나의 우화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오랜 옛날 고려시대에는 왕의 명령으로 모든 노인들을 깊은 산 중에다 버려 들짐승에게 먹혀 죽게 하거나 굶어 죽게 하였던 것이다. 무용지물의 노인들이 식량만 소비한다면서 식량을 절약하기 위한 가난한 나라의 왕이 취한 비인간적인 가혹한 행위였던 것이다.

시대는 변하면서 발전을 하는 것이 원리이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가 되고 교육과 문화, 그리고 정치적으로 첨단의 발전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동영 의원이 망언으로 60, 70대 노인을 모욕했다. 이는 스스로가 고려의 왕이 된듯 고려장을 재귀시켜 정치적으로 모든 노인들을 죽이겠다는 기만한 행위로 보여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를 지탄하는 것이다.

정동영의원의 노인들에 대한 폄하 발언은 한 국민의 권리를 무시한 정치인으로서의 무식한 행위이다. 뿐만 아니라 한 가정의 부모와 자식간의 그 사이를 이간시키는 불순한 처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의 장래는 20,30 세대들로 이룬다”라는 정치적 선동의 행위를 과연 국민들은 이를 옳다고 판단할 수 있겠는가? 비록 세대 차이에서 오는 정치적 이념의 갈등이 있다고는 하겠으나 젊은이들의 혁명이 노인들을 상아탑 속에 가두어 정치에는 참여하지 말라는 처사는 옳지 못한 행위이다.

4.15 총선에서 승리한 열린우리당의 젊은이들의 정치적 혁명을 보면서 정동영의원이 시도한 60, 70세대의 고려장이 그 뜻을 이룬 듯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신중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60, 70세대의 노인들이 있기에 30,40세대의 젊은이들이 존재하는 것이며 머지않은 장래에 이 젊은이들도 60, 70세대가 되어 같은 괄시를 받아서야 되겠는가?

워싱턴포스트지가 평가하였듯이 “젊은층의 혁명”이 올바른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온 국민은 4.15 총선 결과에 승복하여 젊은 세대들을 상징하는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을 인식하는데 최선을 다 하여야 할 것으로 믿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 현상과 정동영의원의 망언이 초래한 극심한 세대 차이를 제거하는데 노력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은퇴제도를 법적으로 폐지한 미국에서는 20대로부터 70대까지 세대를 초월하여 만인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모든 분야에서 함께 일하는 모습이 부럽기만 한 것이다. 정동영의원이 법적으로 보장하는 국민의 권리행사인 투표권을 박탈하려고 한 행위와 모든 분야의 베테랑인 60, 70세대를 모욕한 그 망언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나라를 위하여 그는 정계 은퇴 뿐만 아니라 모든 공직에서 사퇴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