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해와 바람 이야기

2004-04-28 (수)
크게 작게
연창흠(편집위원)

북한 평북 용천역 열차폭발 사고로 막대한 피해가 난 북한에 대해 한국은 물론 세계 각국과 국제기구들의 인도적 지원이 밀려들고 있다.한인사회도 폐허로 변한 북녘에 희망의 손길을 보내는데 적극 나서고 있다. 뉴욕한인회, 뉴욕한인직능단체장협의회, 재미한국청년연합 등 뉴욕 한인단체들이 지난 22일 발생한 북한 용천역 열차 폭발사고 희생자 및 가족들을 돕기 위한 본격 모금활동에 들어갔다.

이처럼 북한동포를 돕자는 한인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와 다른 의견을 가진 한인들도 제법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북한 참사 이후 몇 차례에 걸쳐 가까운 사람들과 술자리를 했다. 말머리는 북한 열차 폭발사고에 관한 것이었고, 어떻게 도와줘야 하느냐의 질문도 뒤따랐다. 그러나 서로의 생각이 똑같지 않았고 “왜 도와줘야 하는데?” 라는 의견도 제시됐다.

북한동포돕기 여론에 대해 대부분은 아무리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도 한인들은 당연히 적극 나서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북한 동포는 동족인 만큼 그들의 비극을 외면할 수 없다’ ‘북한 정권은 미워도 북한 동포까지 적대시하여 동족의 비극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북한 동포는 같은 민족이며 형제부모처럼 살아야 할 동족이니 만큼 따뜻한 온정의 손길을 보내야 한다’는 등이 그 이유였다.

방법론으로는 북한 동포 돕기에 대한 창구는 일원화하되 너무 생색내는 분위기로 몰아가지 말고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듯 도와주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반면에 북한동포를 돕자는 의견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참사로 인해 북한동포를 인도적으로 도와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결국은 북한정권만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북한 동포보다 고국의 결손가정이나 아직도 굶고 사는 빈곤아동을 도와주는 것이 훨씬 낫다는 의견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나 먹고살기도 힘든데 누굴 도와줄 수 있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심지어 ‘빨갱이는 빨갱이일 뿐이다’며 북한을 무조건 적대시하는 이도 있었다.

그동안 한인사회에서는 북녘 땅 곳곳을 할퀸 수마로 인해 북녘동포들이 생존 그 자체가 위협 당하고 있을 때 그리고 기아선상에 헤매는 북녘 땅의 어린이들을 위해 일시적이 아닌 지속적인 도움을 전개해 오고 있다.

이는 북한 주민은 우리의 한 겨레요 민족이기에 북한 동포의 고통을 같이 아파하며 우리의 정성을 전달하는 것은 같은 동포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일부일지언정 북한동포까지 무조건 적대시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날 해와 바람이 길가는 나그네의 외투 벗기기에 내기를 걸었다. 강풍이 몰아칠수록 나그네는 외투 깃을 세우고 여미는 것이 아닌가? 바람은 힘이 모자라 그렇게 하는 줄 여기고 있는 힘을 모아 폭풍으로 몰아쳤지만 결과는 무위로 끝났다. 바람과 구름이 겉이자 그 사이로 해가 드러났다.

햇볕이 내려 쪼이자 나그네는 “웬놈의 날씨가 이렇게 변덕이지, 더워 못 견디겠네” 라며 외투와 겉옷을 벗어 던진 채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는 ‘해와 바람의 이야기’로 강한 것보다는 부드러운 것이 경직된 관계를 푸는 지름길이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우리는 북한동포가 우리의 이웃만이 아니라 우리의 한 핏줄이자 형제요 가족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먼저 미움, 원한, 증오를 풀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그래야만 해외에 살고 있는 우리와 북한동포들이 한가족처럼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지 않겠는가?

앞으로는 북한동포를 세차게 몰아치고 무조건 적대시하는 일부 한인들의 생각은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나가던 나그네의 옷을 벗긴 쪽은 매서운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북한 용천역 열차 폭발사고로 인해 고통 당하고 있는 북한동포들도 무조건 도와주어야 한다. 가족과 형제 같은 동족을 도와주는 데는 어떤 조건이나 이유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