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빗장을 풀어라

2004-04-2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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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한국은 조선 말기 흥선 대원군의 쇄국정치로 개화가 늦어지면서 국가의 힘도 약화됐다. 당시 인근국가인 일본은 조선과는 달리 대문을 활짝 열고 유럽과 미국 등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길러진 힘으로 조선을 유린했다. 대원군이 당시 마음의 문부터 먼저 열고 나라를 활짝 개방했더라면 한국의 역사는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쇄국이란 결국 독선과 아집으로 인해 독재를 불러오고 마침내는 스스로의 파멸과 외부와의 고립을 자초한다.

마찬가지로 작게는 가정이나 직장에서도 타인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원만한 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다. 더구나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어서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서로가 주고 받고 쌍방간에 돕고 사는 관계가 바로 인간사회다. 그런데도 주위에서 보면 언제나 대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살다 문제가 생기면 쩔쩔 매는 사람들이 있다. 평소 마음 문을 열고 친구들이나 이웃, 직장 동료들간에 관계를 잘해온 사람은 이럴 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급하게 병원에 가야 될 일이라든지, 경제적인 어려움 등 신상에 문제가 생길 때 남의 도움을 받으면 훨씬 문제를 쉽게 처리할 수 있다.한인들은 동네에서도 보면 대부분 마음 문이 닫혀 있다. 엘리베이터나 거리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쳐도 ‘하이’는 커녕 혹시나 말을 부칠 새라 얼굴표정이 굳고 입이 꽉 다물어져 있는 예가 많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과연 혼자서 이 세상을 살 수 있을까 공연히 염려된다.

어떤 한인은 보통 때 누구를 돕거나 한인사회에 전혀 관심이 없다가 문제가 생기면 도와달라 손을 내밀고 제대로 안되면 욕을 하거나 불평을 늘어놓는다. 어려울 때 내가 도움을 받으려면 평소 주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 또 그에게서 도움을 받으면 언제든 그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다시 도와주는 그런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에는 최근 간암을 앓던 사람이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로부터 간을 기증받아 생명을 건졌다는 미담이 있다. 이것은 상호간에 주고받는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나 하나의 열린 마음이 모아지면 결국 사회 전체가 밝아진다. 물론 살기도 각박하고 어려워져 남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혼자의 힘만으로 이 어려운 세상을 산다는 건 무리이다. 한인 업소를 보면 지역사회와 담을 쌓고 사는 곳들이 적지 않다. 지역주민과도 평소 서로 대화하고 교류하며 오고 가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해 무슨 문제
가 생기면 쩔쩔매고 야단 법석한다.

알다시피 LA 4.29폭동 때도 한인상가가 모두 폐허됐을 때 그 가운데도 몇 개 업소는 살아남았다. 이는 평소 동네 흑인들과 친하게 지내고 지역사
회를 위해 도움을 주고 한 가게들이라고 한다. 교회도 보면 한인들끼리만 어울리는 경우가 많다. 큰 교회라도 지역사회를 위해 문을 열지 않는 곳도 적지 않다.

혼자만 건물을 자유롭게 쓰자는 생각 때문인지 공간이 비어있는 날이라도 커뮤니티나 지역인을 위해 전혀 오픈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히 주민들의 눈에는 한국인 교회가 폐쇄적으로 보일 수밖에. 내가 누구를 사랑하고 염려해주면 상대방도 무슨 일을 당할 때 도와주게 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상부상조 정신이요, 상생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지 않으려면 상생의 정치를 해야 한다. 북한은 지금 룡천역 폭발사고로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 각계로부터 관심과 지원이 잇따르고 있다.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받기만 했던 북한이 또 무슨 염치로 손을 내미는가 괘씸한 생각도 드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인명이나 물질적인 손실이 너무 커 인도적으로 외면하기가 어렵다. 김정일을 비롯한 정권 수뇌부가 한 짓은 밉지만 열악한 상황에서 겪는 동족의 아픔과 고통을 어찌 모른다 할 수 있겠는가.

그 피해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북한이 다 문을 열고 국제기구에 사건 공개와 함께 구원을 요청했겠는가. 북한은 이제 받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제사회에 문을 열고 함께 더불어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상생의 정치, 상부상조의 정치를 시작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지난 54년간 굳게 잠긴 빗장을 이 기회에 풀고 마
음 문을 활짝 여는 것만이 북한이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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