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땅에도 한류(韓流)를”

2004-04-2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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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준재(미주한인청소년재단 회장)

은근과 끈기는 한국인의 특성 중의 하나라고 곧잘 말한다. 지난 10년간 채널 13 한인후원회가 오늘에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은근과 끈기의 산물이다.

다음의 이야기는 다분히 개인적인 회고가 될런지 모르지만 드러낼 수 없었던 목적을 향한 은밀한 계획의 끈질긴 추구의 역사다.1973년 무더운 여름, 김포공항을 통해서 이민의 길을 떠날 때 머리 속에는 물론 정다운 고
국을 오랫동안 떨어져 있을 아쉬움은 있었다. 군대를 갓 제대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28세의 젊은 나이에 생판 모르는 이국을 택했다는 그 자체가 꿈을 좇는 용기라기 보다는 갈등의 방황길에 첫 발을 떼어놓는 것이었다.


하기사 온전한 의사가 되기 위한 수련과정이 우선순위 첫째였지만 웨스트포인트의 모토처럼 국가(Country)에 대한 충성과 군인으로서가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의무(Duty)와 국가와 민족에 대한 명예(Honor)로운 한 시민으로 성장해 가리라는 다짐이 가슴을 꽉 채우고 있었다. 당시의 시대상황의 결과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두 개의 사건은 사랑하는 조국에 대한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었다. 이곳의 언론방송이 한국 때리기(Korea Bashing)를 날이면 날마다 말과 글로 자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두 개의 사건이란 ‘코리아 게이트’라 불리던 국회의원 뇌물사건이었고, 또 하나는 2차 중동전의 발발로 한국정부의 이스라엘 공화국과의 국교 단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듯 의회 로비를 위해서 뇌물을 바친 사건은 프레이즈 청문회를 통해서 낱낱이 까발리고 있었다. 한국정부나 한국인은 뇌물로 만사 해결하는 듯 비치게 만들었고, 이 나라의 그 뒤에 따르는 숱한 ‘게이트’라는 이름의 추한 사건의 원조가 탄생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중동 원유 보급의 원활함을 위해서 이스라엘 공화국과 단교 조처를 해버렸으니 언론매체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어쩌다가 나타나는 고국의 소식은 경찰봉에 쫓겨가고 두드려맞는 시위군중의 모습이나 생계를 위해 열심히 24시간 일하는 한인 이민들의 모습이 고작이었다. 사실의 보도이긴 했지만 다분히 한국이나 한인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으로 비쳐졌던 것은 나만의 판단이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련의 과정을 밟은 후 개업의사로 자리를 잡아가면서도 이 나라에 비치고 있는 한인사회나 한국에 대한 좋지 않은 느낌을 바로잡아 주어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마음 깊숙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속에 세월이 20년 훌쩍 지나가 버렸다.

이 곳의 3대 상업방송을 통해서 세계 뉴스를 열심히 보면서도 수준높은 교양 프로그램을 내보내는 채널 13은 시야를 더 넓혀주고 지적(知的) 챌린지를 하는지라 채널 13을 보는 시간이 더욱 많았다. 채널 13의 팬이 되었다는 말이다.

어느 날, 채널 13의 이사회의 광경을 방영했을 때 거기에 나타나는 인물들이 ‘월트 크롱카이트’라든지 ‘빌 모이어’라든지 미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았을 때 ‘바로 이것이다’ 하는 생각이 전광석화처럼 머리를 스치고 흥분하고 있었다. 저들과 친구가 되기 위한 방법의 모색은 곧 이 나라에 한국과 한인에 대한 이미지 고양에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들의 집행위원회에서 한인후원회가 왜 필요한지 역설하는 과정을 거쳐 길다면 긴 10년이 이어져 왔던 것이다.1999년 3월 18일 오후 8시는 아전인수가 될 지언정 한인의 역사를 이 땅에 긍정적으로 심는데 조그마한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한인의 정신(Korean-American Spirit)’이 시청자 25만명에게 우리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우리의 역사가 무엇인지 저들의 머리에
단편적이지만 심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뒤따른 뉴욕타임스의 한국식당이나 한인교회의 2세들의 태도에 관한 전면기사는 주류사회에 한인들을 재평가할 뿐만 아니라 이해시키는데 도움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늘 주장하지만 이미지는 상품이다. 이제는 동남아에 휩쓸고 있는 한류(韓流)를 이 땅에 심고 주류사회의 정서에 따라가는 세월을 또 헤이리라. 우리만이 갖고 있는 문화의 깨우침은 국가경쟁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파급효과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속에 또 10년을 맞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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