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3세기 말, 건국 1,037년을 맞은 로마는 무정부 상태의 지옥도였다. 50년간 황제 20명이 넘게 교체되는 정치적 혼란, 게르만족과 사산조 페르시아의 안보 위협,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으로 제국은 파산 직전이었다.
이 군인 황제 시대의 종언을 고하며 등장한 제51대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비천한 신분에서 군대라는 계층 사다리를 타고 올라온 인물이었다.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공멸한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즉위하자마자 동서로 권력을 분산시켜 각각 정제(正帝 / Augustus)와 부제(副帝 / Caesar)가 나누어 다스리는 사두정치를 도입했고, 국경 수비대를 증원하며, 세금 징수 시스템을 정상화했다. 그 결과 비틀거리던 로마의 수명은 200년 이상 연장되었다.
그러나 이 위대한 개혁의 이면은 숨 막히는 통제와 세금 폭탄의 시작이었다. 황제는 군비를 충당하기 위해 전 제국을 뒤져 가혹하게 증세했고, 귀족들에게 세금 징수 책임을 지워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사재를 털게 했다.
부유층들은 관직을 버리고 시골 대농장으로 숨어들어 성벽을 쌓고 사병을 길렀는데, 이것이 훗날 중세 봉건 장원 제도의 시초가 되었다. 농민은 토지에 묶여 이동의 자유를 박탈당했고, 물가를 잡겠다며 내놓은 최고가격령은 오히려 물건이 자취를 감추는 결과를 낳아 거대한 암시장만이 판을 쳤다.
분열된 민심을 하나로 묶으려 황제 숭배를 강요한 결과, 이를 거부한 기독교인들은 재산을 압수당하고 목숨을 잃는 대박해를 겪어야 했다.
로마인들은 황제의 강력한 울타리 덕분에 야만족의 위협은 피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재산권, 거주의 자유, 신앙의 자유를 모두 잃은 전체주의 병영 국가의 부품이 되어야 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로마를 구하기 위해 로마의 영혼을 지워버렸다.
1,700년이 지난 2026년, 이 역사는 미국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현재 미국 역시 중첩 위기를 통과하고 있다.
유가 급등과 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가 서민 경제를 위협하고, 이민자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연일 격화되고 있다. 위기가 깊어질수록 정치는 가장 손쉬운 유혹에 빠진다. 강력한 행정 명령, 국가주의적 시장 통제, 이민자를 향한 극단적 배제가 바로 그것이다.
당장의 물가를 잡고 국경을 잠그겠다는 명분 아래, 미국을 미국답게 만들었던 본질(자유와 포용, 다양성과 개방성)을 훼손하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외형적인 경제 지표나 군사적 패권은 유지될지 몰라도, 이민자의 역동성이 사라지고 사회적 감시와 배제가 일상화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아메리칸드림의 미국이 아니다.
우리는 '영혼이 바뀐 제국'에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이번 중간선거는 어느 정당이 의회를 장악하느냐의 싸움이 아니다. 위기 앞에서 '통제와 배타'의 유혹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미국의 위대한 유산인 시민이 주인인 '자유와 포용'의 가치를 지켜내며 위기를 돌파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역사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
한인 유권자들은 이민자로서 미국의 개방성 수혜를 입은 당사자이자, 이 나라를 지탱하는 당당한 주인이다. 눈앞의 거친 구호와 단기적 이익에 현혹되지 않고, 미국의 정체성과 영혼을 지켜낼 지도자가 누구인지 역사라는 거울에 비추어 냉정하게 검증해야 할 때다.
우리의 소중한 한 표가 미국의 영혼을 지키는 방파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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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시민참여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