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최경주와 “하면 된다”

2004-04-2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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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목회학박사)

한국 완도 섬 마을 농군의 아들 최경주(34)가 미국 프로 골프계(PGA)의 귀빈으로 등장했다. 골프장에서 골프 공을 줍던 볼 보이가 내노라 하는 전세계 골퍼들을 제치고 지난 68회 마스터스 대회(4월9-12일·조지아 오거스타) 때 단독 3위에 입상된 후 달라진 그의 위상이다.

그는 요즘 미국에서 태극기를 가장 잘 휘날리고 있는 한국 사람 중 한 사람이다. 한국인으로 한국 국적을 갖고 경기에 임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한국 외교관들이 한국의 위상과 이익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최경주 만큼 단숨에 한국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린 사람도 그리 흔치 않다. 마스터스 대회의 권위가 입증하기에 그렇다.


최경주의 골프 입문은 남다르다. 그는 다른 선수들이 국가대표나 상비군을 지낸 후 미국 프로계에 입문해 좋은 성적을 내게 되었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골프를 시작했다. 완도의 중학교 역도부에 들어가 운동을 하던 최경주.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완도에 들어선 골프연습장 볼 보이 아르바이트로 취직해 학비를 벌었다. 이 때 그는 친구들끼리 어울려 다니며 노는 친구들이 가장 부러웠다고 한다.

골프 연습장에서 그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 이사장을 만난다. 이사장은 서울에서 연습할 것을 권유해 서울로 가게된다. 그러나 서울에 가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냉방에서 자면서 너무 많은 연습량으로 손바닥이 거북이 등처럼 변했다. 그것을 그의 부모들이 보고 함께 눈물을 흘리는 등 혹독한 시절을 보낸다. 한서고등학교를 졸업 후 준 프로 생활을 하는 중 목사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 김현정씨를 만난다.

최경주는 섬에서 태어난 고등학교 졸업자이지만 아내는 법대를 졸업했다. 결혼 후 김현정씨는 직장을 다니며 계속해 최경주의 뒷바라지를 했다. 돈을 벌어들이지 못했던 그때는 돈이 없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적도 여러 번이라 한다. 나중에 한국 프로가 되었지만 초청하는 데가 없어 차라리 프로를 접고 취직을 할까 했으나 인천의 한 연습장에 들어가 자리를 잡게
된다.

1995년부터 한국의 골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 시작한 최경주는 97년 한국의 3개 대회 우승을 했고 99년엔 한국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 해 최경주는 미국에 건너와 미국PGA투어 프로테스트(Q스쿨)에 응시해 35위를 차지했다. 조건부로 출전하는 프로가 되었지만 프로진출 첫해인 2000년엔 상금랭킹 134위로 떨어져 다시 프로테스트를 받아야만 했다.

한 마디로 “찬밥 신세”인 그는 프로테스트는 통과했지만 무명선수로 “땜빵” 용 선수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는 가장 어려웠던 것은 언어장벽과 생활문화의 차이였다고 한다. 언어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하루 영어단어 4개와 문장 하나를 외어야만 잠자리에 들곤 했다고 한다. 무명선수 시절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며 다 때려치우고 한국으로 돌아갈까 생각했다는
그는 아내를 한국에서 오게 해 착실한 신앙생활과 더불어 점점 안정되어갔다.

도전의 정신을 가지고 새로운 인생을 펼쳐보자는 꿈을 안고 미국 프로 골프계에 발을 내디딘 최경주는 2002년 컴팩클래식과 템파베이클래식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2003년엔 독일서 열린 린데저먼마스터에서 우승했고 금년도 세계 4대 메이저대회 중 하나인 마스터스대회 3위를 차지했다.

2000년 합계 10만 달러 미만의 수입을 올렸던 최경주는 지난 마스터스대회 3위 입상 하나만으로 44만2,000달러를 벌었다. 이제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최상위권 프로선수가 되었다. 그는 현재 가는 곳마다 갤러리(골프관객)들의 환호를 받는다.


그가 한국인으로 태극기를 전 세계에 휘날릴 수 있게 된 배경에는 부모의 기도와 아내 김현정씨의 내조가 있었다. 또 좌절을 이기게 한 신앙이 있었다. 그리고 배고픔과 서러움을 안은 헝그리정신 속에 한국인의 끈기와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하면 된다”는 그의 집념과 손바닥이 발바닥처럼 굳어져 버릴 정도의 연습과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이 있었다. 그리
고 꿈이 있었다. 그것들이 그의 오늘을 있게 만들었다. 그가 미국에서의 무명시절 좌절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면 오늘의 최경주는 영원히 있을 수 없을 게다.

최경주는 마스터스대회 후 기자와의 인터뷰 중 “오늘은 톱10에 드는데 만족하자며 욕심을 버렸다. 편안하게 경기하다 보니 성적도 좋아졌다”고 겸손해 했다. 때론, 욕심도 버리고 편안한 만족감을 가질 필요도 있나보다. 장하다, 최경주! 계속해 좋은 성적을 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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