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동시에 가질 수는 없다

2004-03-2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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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들을 가질 수는 없다. 이 말의 첫 부분에 부수되는 설명이 필요하다. 가지고 싶은 것들이 상식적인 것들이어야 하겠다.

나중 부분에서는‘동시에’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같은 시간대에 여러 가지를 지닐 수는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이 결코 특별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잊기 쉽다. 우리의 욕심이 자기도 모르게 점점 자라나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오래 사는 장수·건강·가족·사랑·친구… 등은 기본적이다. 이밖의 것들이 엄청나다. 명예·지위·풍부한 경제력·좋은 직장·존경받는 일·이름을 남기는 일… 들을 생각할 수 있다. 이 때에 명예와 경제력을 함께 차지하고 싶다든지, 지위와 경제력·존경 받는 일을 동시에 차지하고 싶어 한다면 곤란한 일
이 되고 만다는 뜻이다.

이름을 남기는 일이나, 명예를 얻고자 하는 일이나, 존경을 받게 되는 일은 본인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성질이 아니다. 주위에 있는 타인들이 인정하는 결과인 것이다. 본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심혈을 기울이며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으면 주위의 인정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타인들이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일하면서 행복하면 되는 것이다. 일하는 즐거움이란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즈음 미국의 지성적인 여성들이 가정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 그들은 전문직과 경영직에 종사하던 신세대 여성들이고,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직장을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행동이 '50년대의 고전적인 모성 관념을 실현하려는 것이 아니며, 이들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으나, 동시에 가질 수는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모든 것이란 직장에서 발휘할 수 있는 경영 능력·분야별 기능·새로운 도전·합리적인 사고·일의 추진력·인간과 물품 관리력 등 직장인으로서의 여러가지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즐거움을 말할 것이다. 또한 가정인으로서의 자녀교육·가정 관리·남편과의 관계 등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뜻할 것이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하
지만 동시에 가질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들은 드디어 해결 방법을 찾았다. 자신이 어느 때 어디에 있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그녀가 하는 일에 시차(時差)를 두기로 한 것이다. 어느 한 시간대에는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자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들이 완전히 가정으로 돌아온 것은 아닌 줄 안다. 그들은 말한다.

자녀들과 지내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며 성장을 돕는 동안에 직장에서 얻은 스트레스를 풀고 자기 자신을 재충전 하겠다고.이러한 몇몇 가정을 소개한 타임 시사주간지에 실린 기사는 다양하며 제각기 특색이 있지만 공통성도 있다. 이 공통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각 가정의 사진이다. 어린 자녀들과 이를 돌보는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표정들이 평화롭고 안정감이 있다. 자녀들이 아직 어려서 ‘웰컴 홈, 마미’란 사인을 써서 붙이지는 않았지만 자녀들의 표정이 그것을 말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한 사람이 두 가지 일을 하면 두 지게를 졌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간 주부들은 그동안 어깨에 두 지게를 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지게 하나를 내려서 차고에 세워 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때가 오면 차고에 두었던 지게를 다시 찾게 될 것이다. 그들의 사회 참여는 개인을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 바람직하다.

직장에 다니는 어머니에게서 자라 성인이 된 아들이 어머니한테 말하였다고 들었다. ‘엄마는 내가 같이 있고 싶을 때는 직장에 나가시다가, 어른이 된 지금에야 내 옆에 계시네요’ 이 말에는 어렸을 때 엄마를 그리던 아들의 원망이 담겨있는 것 같다. 그래서 엄마는 마음이 아팠다고 하였다.

요즈음도 자녀가 어린데도 직장에서 일하는 많은 어머니를 볼 수 있다. 현명한 미국 어머니들은 가정으로 돌아가 자녀들에게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어린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물질적인 투자 보다 시간의 투자가 교육적이고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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