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분수(分手)

2004-01-2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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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작가의 그림이나 무명작가의 그림이나, 그 화판(畵板)은 흰 바탕이다.

오래된 기억이지만 할아버님께서 세상을 뜨셨을 때의 기억이 새롭다. 그 시절에는 구걸하는 사람들이 왜 그리 많았었는지... 초상집 앞은 그들의 집합 장소처럼 되었었다.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들의 한 떼가 진을 쳤다. 머물러 있는 곳은 언제나 대문 밖이며, 혹 낯선 거지가 나타나면 여지없이 쫓아버리며 수문장 노릇을 해낸다. 그들 중에도 우두머리가 있었던 것 같다.


우두머리에게 잔심부름을 시키기도 한다. 술도가에도 보내고, 시장에도 보내고, 이 일 저 일 잔심부름이 많았다. 그 때마다 돈을 내주면 나름대로 일의 경중을 가늠하는지 여느 때는 직접 가기도 하고, 아니면 다른 부하(?)에게 시키기도 한다.

밥 때가 되면 언강생심 방이나 대청마루는 천만의 말씀, 마당 한쪽에 깔아놓은 멍석 위에 둘러앉아 한 상 가득한 음식을 먹으며 만족해 한다. 그 때도 한 명은 대문을 지킨다. 술도 한 잔 하라고 권하지만 왠지 그것만은 사양한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고 출상하는 날이 되면 이들은 대문 앞에서 큰 길까지 몇 번이고 비질을 해 깨끗하게 쓸어놓는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 당시에는 남자들만이 상여를 따라 산에 갔었다. 나흘 동안 그 많은 일을 치른 집안에 뒷일은 얼마나 많았겠는가? 부인들은 산에서 돌아온 뒤에 이어질 의식을 위한 준비로 음식을 준비하랴, 사푼가루로 유기그릇들을 닦으랴, 하루 해가 짧은데 집 안팎 청소를 감당해 주는 이들은 역시 그들이었으며 일을 마친 그들은 미련없이 조용히 자리를 떠나 본래의 제자리(대개의 경우 다리 밑)로 돌아갔다.

“한술 줍쇼” 하는 소리가 전혀 없이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아침, 어머니께서 “오면 한 상 차려서 대접해야 하는데 안 온다”고 말씀 하시는데 대문 미는 소리가 삐꺽 하며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 “한술 줍쇼” 어머니께서 일어나시며 하시는 말씀 “보름만에 왔어”…

분수를 모르는 군상(群像), 믿지 못하는 세태, 의리가 없는 인간 등 쓰기 조차 싫은 말들로 가득한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조여드는 듯 하다.

너 나 없이 우리 모두는 공평하게 주어진 하얀 화판 위에 자화상을 그리며 살아간다. 내 분수에 걸맞는 그림을 그리자. 그 작품이 걸작이 되건, 졸작이 되건, 그 심사 결과는 나의 후손들에게 영욕으로 돌아갈 것을 믿으면서 최선을 다 해 그려가자. 아직 해는 중천이다.


김홍근(무궁화상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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