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혼동

2004-01-2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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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아무리 많아도 멀리서 보아야 숲이 된다. 멀리서 보이는 숲을 볼 때에는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이 막연하지만 숲속에 들어가 나무 하나 하나를 스쳐보면 나무의 종류도 다르고 모양도 다 다르다. 제각기 특성을 가지고 산다.

가정을 이루고 있는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들도 관념상 가정의 일원일 뿐이지 출생부터 다 다를 뿐만 아니라 한솥 밥을 먹고 살아도 성격이 다르고 바라는 것도 다르고 꿈도 다 다르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소수의 군중 속에 홀로다. 인연이 있어 만나 같이 살지만 인연이 다하면 뿔뿔이 흩어져 죽는 것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인생의 속성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시대 상황과 시대상황의 내용이 사는 과정에서 바뀐 것은 사실이다. 더욱이 과학문명이 첨단을 걸어가고 경제가 사회를 지배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가정의 존속까지 간섭하게 된 현대에 와서는 죽네 사네 하면서 사랑이란 이름 하나로 만난 부부도 시대감각이 요구하는 조건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시대감각이란 한군데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하고 있기 때문에 불행하게도 부부관계의 지속도 항상 긴장하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남편이나 아내가 상대의 그림자를 따라다니는 시대가 아니라 이제는 자기가 그려놓은 그림자를 바라보며 걸어가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일본에서는 노년에 들어선 부부들까지도 이혼율이 높아가고 있다. 남편이 ‘지갑’으로 상징되는 사회이니 지갑이 비게 되는 처량한 신세가 되면 그 남편은 이혼의 대상이 되고 아내는 ‘세탁기’로 상징이 된 사회이니 바쁜 일정이 사라진 나이가 되면 세탁물이 턱없이 줄어든 남편의 아내도 여지없는 이혼의 대상이 되고 만다.

다야 그렇겠는가?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혼자도 살 수 있는 문명의 발달과 자기의 인생은 자기 것이라는 가치관의 확립이다. 남편우위 시대는 끝났다. 여필종부의 시대도 이미 끝났다. 사회 속에서도 능력이고, 가정에서도 능력이고, 상대에게도 능력으로 서야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어떤 문제를 놓고 하는 말인지는 몰라도 부부 사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엔 이혼하는 쪽이 좋다는 한국인의 의지 조사가 버젓하게 신문에 발표되었다.

남편이나 아내나 부부라는 이름으로 항상 같이 살 수 있다는 안이한 시대가 아니다. 시대가 가르치고 가는 현실감각이다. 직장에서도 능력이 없으면 퇴출당하고 능력이 없으면 가정에서도 퇴출을 당하게 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내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여자나 남자나 아내나 남편이라는 이름 때문에 어느 정도 손해는 보아도 희생 되어서는 아니된다. 줄이 꼬여서 좋은 소리를 내는 거문고는 없다.

얽혀서 내려오는 밝은 햇살도 없다. 지척을 사이에 두고 선로가 같은 방향으로 뻗어있기에 기차가 목적지를 향하여 달릴 수 있듯이 사실상 따지고 보면 남암인 부부도 얽히고 꼬여서 분간없이 헤매이며 희생당하지 말고 지척을 긴장으로 사이에 두고 인격을 인격으로 볼 줄 아는 분별로서 살아야 완성은 아니더라도 완성 가까운 정거장에 각자의 인생이 후회없는 결실로서 도달할 수 있다.


인생은 홀로이고 홀로 사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내 가까운 친척 하나는 남자랍시고 일을 벌려놓고는 된다 된다 하면서 꿈에 젖어 바쁘게 헤매이며 소득 없이 평생을 소비하더니 결국에 가서는 어디에 내놓아도 아까운 한 여인을 부인이라는 이름으로 말짱 희생을 시켰다.

지금도 할머니가 된 부인의 상점에서 몰래 몰래 용돈을 챙겨간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눈을 감는 부인이란 이름의 여인들은 도대체 무엇으로 지어졌는지 나에게 있어서는 많은 세상살이가 혼동으로 다가온다.
혼동 그리고 또 혼동!

김윤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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