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이색주장, 너무 심하다

2004-01-2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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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람들은 생일날이나 특별한 기념일에 서프라이즈 파티를 즐겨 한다. 요란한 장식과 상을 차려놓고 축하객들이 모인 가운데 불을 끈 채 주인공을 데려와서는 갑자기 불을 켠다.

주인공이 기대하지도 않았던 축하를 일순간에 받게 됨으로써 그 충격과 기쁨으로 인한 감격은 극대화 된다. 명절 때나 기념일에 선물을 아름답게 포장해서 건네는 것도 이런 서프라이즈 효과를 위한 것이다. 이런 풍습이 이제는 한국에서도 보편화 되었고 어떤 면에서는 미국 보다도 더 극성스러운 점도 있다.

서프라이즈 파티는 일상사의 틀을 깨는 신선한 충격을 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행로의 앞날이 모두 예측대로만 이루어진다면 안심할 수 있고 편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미건조하고 지리할 수도 있다. 별로 희망이 없어 보이는 인생이지만 복권이 맞아 돈벼락을 뒤집어 쓸 수도 있고 갑자기 벼락 출세할 수도 있는 것이 인생사이기에 묘미가 있다.


이런 이변이 사람에게 주는 신선한 충격이 크기 때문에 정치에서 이런 수법을 많이 썼다. 한때 YS가 깜짝쇼의 명인이었다.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각을 뛰어넘은 말과 행동으로 충격을 주어 의도하는 효과를 극대화하거나 사태를 반전시키기도 했고 참신한 이미지를 부각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그 후 한국의 정치판에서는 이런 깜짝 쇼가 보편화 되다시피 하여 결국 깜짝 놀랄 사람이 대통령까지 되었고, 그러고도 모자라 깜짝 놀랄만한 언행이 계속되었다. 이렇게 되니 이제 한국에서는 이변이 더 이상 이변이 아니라 보편적인 일이 되었고 이변이 아닌 것은 구태의연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개인 생활의 서프라이즈 파티처럼 역사나 사회 속에서 이변은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다. 전기나 비행기, 컴퓨터와 같은 새로운 발견과 발명, 민주주의와 같은 새로운 사고는 인류사의 대 이변들이며 그 충격과 감격은 이루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이변이란 그리 흔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단어 그대로 이변이다.

이변이 보편화 되는 현상은 무엇인가 기발난 아이디어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려는 풍조가 만연할 때 나타나는 풍조에 불과하다. 마치 상업상의 한탕주의와 일맥상통하는 현상이다. 내용이야 있건 없건, 그럴듯한 선전으로 사람들의 구매욕을 자극하여 물건을 팔아서 돈을 챙기고 날라버리는 한탕주의는 다분히 사기성이 내포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정치 뿐 아니라 학자들의 학설이나 주장에도 이런 깜짝 쇼가 스며들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오도하고 있다. 지금 한·중·일에서 풍미하고 있는 민족주의 바람이 그런 것이다. 중국이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 속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이나, 일본이 식민지 시대의 역사를 미화하는 것, 한국에서 국제관계를 도외시 한 채 남북한 일체감을 유도하는 발상 등이 각국의 국민적 정서를 선동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일간에 독도 문제가 쟁점으로 또 다시 부각되고 있는 시기에 느닷없이 친일 인터넷 사이트가 등장하여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이 사이트에는 한국인이 일본인을 비호하고 한국을 비난하는 글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독도는 당연히 일본 땅이고 제주도도 일본 땅이다” “이완용 등 친일파는 모두 애국자이다”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들은 행복했다” 등등. 이 사이트의 회원이 2만명이나 된다고 하니 이색 주장치고는 망국적인 이색 주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이색 주장이 어디 그 뿐이겠는가. 전교조라는 교원단체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는 역사와 사회 공부가 또한 그런 것이며 일부 언론이나 정부 관리들의 튀는 언사가 또한 그런 것이 아닌가.

이런 깜짝 쇼나 이색 주장으로 본인들은 대중의 인기를 누릴 수도 있고 스스로 선각자나 사회 개혁자나 된 것 쯤으로 생각하겠지만 실은 역사 앞에 혹세무민의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기영(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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