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명심보감을 그리며

2004-01-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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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 들어가자 마자 파고다공원에서 단성사쪽으로 가다가 낙원동 입구 골목길을 조금 지나 있던 세창서관에서 노란 겉장의 명심보감을 한권 샀던 생각이 난다.

그 책을 고등학교 3년간 항상 책가방에 갖고 다니다가 틈틈이 읽으며 큰아버지와 아버지 말씀을 대신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오늘날까지 나는 명심보감의 많은 구절을 자주 암송하는 버릇이 생겼고, 또 나도 아들 딸들한테 명심보감을 자주 인용하며 훈계를 한다.

오늘날 많은 좋은 책들이 책방에 쌓여 있지만 이 험악한 세상을 헤치며 살아가는데 명심보감 만큼 좋은 책도 흔치 않다. 한국사람이라면 어떤 종교를 믿든지 명심보감을 한번쯤은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말에는 아버지가 5살 된 딸과 6살 아들한테 수면제를 먹인 후 한강다리에서 강물에 던져 죽여버린 사건이 있었고 또 그 한두달 전에는 죽기 싫다는 아들과 딸을 매정하게 고층아파트 창문에서 내려던진후 자신도 그 아파트 창문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엄마가 있었다.

지난해 하반기에만 이렇게 부모가 자식을 죽인 것이 23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자식이 부모를 죽인 사건들도 있었고 넉넉하게 사는 아들 3형제가 부모를 봉양하지 않아 생계가 막막한 부모가 아들들을 고소하여 매달 부모님 생활비를 분담 지급하라는 법원 판결도 있었다.

또 몇년 전에는 외국 유학까지 한 대학교수가 자기 아버지를 살해한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났었다. 학문적 지식만 쌓고 인간의 기본 소양조차 갖추지 못한 사이비 지식인의 반인륜적 사건으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었다. 참으로 정글보다 더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나는 그들이 명심보감을 한번만 읽었더라도 그런 사건을 예방할 수 있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오늘날 대개의 종교 경전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세가 아니라 사후 세계를 위한 것들이다. 그런데 명심보감은 우리가 이 현재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성현의 지혜를 가르친다. 이 현세상을 올바르게 살려면 사후 세계의 천당문은 스스로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사후 천당을 가는 것 보다 우선 이 현세를 올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고 그러기 위하여는 명심보감에서 그 지혜를 배울 수 있다고 본다.

윤 주 환 (뉴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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