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원숭이들이 말한다

2004-01-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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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갑신년이다. 우리들 원숭이 해인 것이야. 그래서 전보다 더 좋은 일년이 되도록 모두 힘을 모아야 하겠다. 알겠느냐? 지금부터 새해 우리가 고쳐야 할 일들을 자유롭게 말해 보아라.’

원숭이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할머니가 말하였다. 그 자리에 모인 수십 마리의 원숭이들이 제각기 손을 들고 흔들어댔다. ‘저요, 저요’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 지난 해 마을을 위해 일을 많이 한 차례로 이야기를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

아버지 원숭이가 점잖게 말을 하자, 한 꼬마가 발딱 일어났다. 그는 작년에 마을에 큰 곰이 나타났을 때 재빨리 위험 신호를 해서 모두 무사하였다.


‘제 생각에는 위험한 날짐승이 나타났을 때와 길짐승이 나타났을 때의 신호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하겠어요. 신호 소리를 좀 더 잘 들으세요’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몸 움직임이 빠른 원숭이가 말하였다.

‘내가 이 마을에서 오직 하나의 나무 오르내리기 심사위원장인 것을 잘 아실 줄 압니다. 그런데 요즈음 어린 원숭이들은 연습을 게을리 해서 부상자가 가끔 납니다. 우리들은 두 손과 두 다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네 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잠깐만, 인간사회의 속담에는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말이 있는데…’누군가가 이렇게 말하였다.‘그래서 나도 조심하고 있지.’원숭이들이 까르르 웃었다.

‘제 생각으로는 우리 마을에 홍보장관을 두어야 하겠어요. 인간들은 여러 모로 우리를 오해하고 있어요. 우리가 서로 상대의 털을 골라주는 친밀한 행동을 가리켜 이를 잡는다고 보고 있으니 억울하지 않아요? 명예 훼손으로 고소를 해도 좋을 듯 하지요.’‘맞아요. 우리가 위생 제일주의로 사는데 웬 이가 있겠어요.’한창 이야기가 무르익자 원숭이들은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였다.

‘우리들의 자랑은 따로 따로 살지 않고 한 무리가 같이 사는 것이지요. 그런데 요즈음 어린 원숭이들은 자꾸 제 멋대로 마을 밖에서 살려고 해요. 같이 살려면 규칙을 지켜야 하고 혼자 살려면 무서운 적을 제 힘으로 막아야 하는 점을 명심하길 바래요.’이 때 목소리가 고운 원숭이가 말을 시작했다.

‘우리의 자랑이 어디 그것 뿐인가요. 엄마 원숭이는 새끼 원숭이의 손발에 힘이 붙을 때까지 결코 떼어놓지 않고 가슴에 안거나 등에 업는 동물로 유명하지요. 우리가 그렇게 자랐으니 엄마들한테 감사해야 해요.’‘고맙다, 고마워. 우리에게는 그런 책임이 있어.’원숭이 엄마들이 일제히 짝짝 손뼉을 쳤다.

‘왜 사람들은 우릴 보고 흉내쟁이라고 하지요? 물론 흉내도 잘 내지만…’‘나도 그 소리가 듣기 싫어. 난 흉내쟁이가 되기 싫거든. 재미있다고 흉내만 내서야 되겠어?’


그동안 잠자코 듣기만 하던 아버지가 다시 목소리를 냈다.‘인간들도 흉내를 잘 내더라. 책으로 나오는 글, 텔레비전의 연극, 옷 입는 것, 노래 부르는 것 등… 그러나 우리는 그러면 안돼. 호랑이, 토끼, 여우, 다람쥐, 새들… 흉내를 암만 내더라도 우리는 어디까지나 원숭이야. 원숭이임을 자랑하면서 살아야 한다.’

‘원숭이로 살려면 우리들의 문화를 사랑하고 우리들의 예법을 지키며 사는 것이지. 즉 원숭이답게 사는 것이다.’동물 중에서 가장 영리하다는 원숭이들은 간혹 자기 꾀에 넘어가기도 하고 자신의 발등을 찍기도 한다. 그래서 잔꾀를 큰 지혜로 키우고, 흉내 내던 버릇을 버리고 새 원숭이 문화를 창조하자는 결심을 하였다.

그들은 무엇이나 보는대로 호기심이 발동하여서 금새 그 일에 열중하는 ‘Curious George’(어린이들이 즐기는 책 이름)처럼 살아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혹시 실패를 하더라도 남의 흉내만 내면서 따라가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2004년은 창조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이다.

여기 저기에 이런 원숭이들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어리둥절 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사람들이 원숭이들을 흉내 낼 지도 모른다.


허병렬(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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