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뉴욕 한인으로 살아가기

2004-01-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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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생활이 3년째에 접어들었는데 한인이기에 겪는 어려운 일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신문이나 잡지, 광고 전단에서 제공하는 할인 쿠폰의 사용이다. 게으른 탓도 있지만 할인 쿠폰의 사용이 익숙하지 못한데다 왠지 계산대에서 쿠폰을 내미는 것을 쑥스럽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차에 탄 후배가 쿠폰이 도려내진 신문을 보고는 형! 보기보다 알뜰하네. 주부가 다 됐어라고 짓궂게 놀려대는 바람에 얼굴이 달아오른 적이 있다. 이후부터는 할인 쿠폰을 도려낸 신문 등은 남의 눈에 띄지 않게 곧 치우는 버릇이 생겼다.


둘째, 맥주나 콜라 등의 빈 캔을 모아서 돈으로 돌려 받는 일이다. 내 자신이 맥주와 콜라를 즐기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다 손님이 와야 빈 캔이 몇 개 생긴다. 이러다 보니 빈 캔을 어느 정도 모으려면 반년, 심지어 1년 이상이라는 만만치 않은 시일과 꾸준한 인내가 요구된다. 헌데 이것도 집에 찾아온 손님 때문에 당황한 일을 겪었다. 아니 그게 얼마나 한다고 빈 캔을 모아요? 요즘도 빈 캔을 모아서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나?라는 말을 듣고 당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옹색한 살림을 들킨 것 같은 부끄러움이 들어서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일들은 남을 의식하지 않고 행동할 수 있게됐다. 장을 보기 전에 할인 쿠폰을 꼼꼼히 챙기고 빈 캔은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다 열심히 모으고 있다. 설령 누가 뭐라고 해도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근데 꼭 한가지만은 아직도 고쳐지지 않는다. 플러싱의 아파트에 살다 보니 엘리베이터, 복도, 계단 등에서 우연히 한인들과 마주치곤 하지만 선뜻 인사말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타인종 사람들에게는 억지 웃음을 보이면서까지 인사를 주고받으면서도 이상하게 한인들 앞에선 입이 닫힌다. 한국말로 인사를 해야할지, 영어로 인사를 해야할지 애매한데다 상대방까지 서먹해 하면 서로 안면몰수하기 일쑤다.

그러고 보니 새해를 시작하면서 변변한 결심 하나 세우지 못한 것 같다. 앞으로 한인인 듯한 이웃을 만나면 내가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고 만약 상대가 알아듣지 못하거나 한인이 아닐 경우에는 한번 더 ‘하이’하고 인사할 수 있는 버릇을 들여봐야겠다.

장래준<취재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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