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특파원코너] 브릭스(BRICs)를 아십니까

2004-01-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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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언론에서 많이 다루는 ‘브릭스(BRICs)’라는 용어를 알아보기 위해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 저널의 검색사이트를 뒤져보았더니, 지난 6개월동안 이 단어가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야후에서 월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애널리스트 두명이 지난해 10월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는 사실을 겨우 알아내고, 주요한 내용을 한국 검색 사이트에서 습득할 수 있었다.

브릭스란 골드만삭스가 브라질(Brazil), 러시아(Russia), 인도(India), 중국(China)의 머릿글자를 따 복수 단어화한 경제 전문용어다.

골드만삭스 리포트의 골자는 중국이 2040년께 미국을 제치고 1위 국가로 성장하며, 2050년에는 브릭스 4개국의 경제력이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지금의 선진 6개국(G6)의 합계보다 커진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인도가 2030년에 일본을 능가,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인도 총리는 이 보고서에 감격했고, 러시아와 남미 등에서도 그 내용이 인기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주요신문과 방송에서 경쟁적으로 신년특집으로 브릭스를 다루고 있다. 그러면 미국에서 생경한 이 용어가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골드만 리포트에서는 지금 세계 12위 경제국가인 한국이 50년후에 10대 강국에 끼질 못하는 것으로 돼 있다. 정부 당국자들이 미래 청사진으로 10대 강국의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경제가 불황의 늪에 허우적거리는 상황에서 국제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과 주변의 중국과 러시아, 인도가 빠르게 성장하는 것에 대한 경쟁심리가 작용했을 수도 있다.

물론 브릭스가 경제발전에 성공, 10대 강국이 되면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 한국의 수출물량이 증가하고 값싼 제품이 들어오기 때문에 주변 국가의 발전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하지만 골드만삭스 리포트에는 많은 허점이 있다.

첫째, 리포트는 브릭스 국가의 경제정책이 건실하게 유지되고, 불행한 일(bad luck)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4개국에서 앞으로 50년 동안 모든 일이 순탄하게 전개될 경우의 가정이다. 그런데 과거의 예를 보면 50년을 전제로 역사를 가정하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알 수 있다.

80년대 미국 경제를 추월할 것처럼 덤비던 일본과 독일은 90년대에 장기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렸고, 핵 경쟁에서 미국을 넘어서던 소련이 무너지고 그 일부인 러시아는 98년에 국가파산을 겪지 않았던가.

20세기초 세계 10대 강국에 들었던 아르헨티나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막대한 대외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브릭스의 한 나라인 브라질도 지난해 여름 경제 위기로 빠지다가 대선 후 룰라 다 실바 당선자가 미국을 찾아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만나 시장경제를 약속한 후 간신히 경제를 회생시켰다. 이머징 마켓에 소속해 있는 네 나라가 국제금융시장에 왜곡이 발생할 때엔 언제라도 붕괴될 위험에 노출돼 있다.

둘째, 중국과 인도, 브라질은 세계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의 주변부로 성장하고, 러시아도 세수의 40%를 차지하는 국제유가가 상승하면서 성장력을 회복하는 허약성을 안고 있다.


브라질을 비롯해 남미 국가들은 종속이론가들이 주장하는 ‘양키 자본주의’에 포위돼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은 미국 경제의 하드웨어, 인도는 소프트웨어 부문의 하청 공장화하면서 발전해왔다. 21세기 첫 세계불황을 맞으면서 선진국 기업들이 노동력의 이동을 꾀하면서 중국과 인도는 글로벌 기업의 방대한 노동시장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다.

4~5년전쯤 한국에서는 핀란드, 아일랜드, 네덜란드, 싱가포르 등과 같은 ‘강소국’을 배우자는 슬로건이 유행한 적이 있다. 이들 강소국 경제는 미국의 정보통신(IT) 버블이 꺼지면서 힘을 잃었다. 글로벌 투자를 위해 만든 월가 투자은행의 한 리포트에 지나치게 맹신할 필요는 없다. 80년대에 베스트셀러 ‘강대국의 흥망’을 쓴 폴 케네디 교수도 한 컬럼에서 브릭스에 대해 신중한 접근을 주문한 대목을 유의 깊게 들어야 할 것이다.

김인영 <서울경제 뉴욕특파원>
in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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