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전직대통령의 팔순잔치

2004-01-0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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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팔순 잔치를 호텔 연회장을 빌려서 열었다는 신문기사를 보았을 때 웬지 모르게 화가 치미는 것에 나 자신도 깜짝 놀랐다.

기사에 의하면 이한동, 김석수 전 총리 등 국민의 정부 시절 장.차관,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 200여명이 회비를 갹출해서 성대한 팔순잔치를 했는데 본인은 수차례 식사 제의를 거절했는데 너무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수락했다는 것이다.

그 기사를 읽는 순간 나는 “과연 한 나라의 대통령이란 다르긴 다르구나. 어쩌면 그토록 경로사상이 투철한 사람들만 골라서 기용했었을까” “역시 그 자리가 좋긴 좋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여기서 잠깐, 김 전대통령은 주위를 둘러볼 필요가 있다. 아방궁(?)속에서만 있어 잘 모르겠지만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많은 불우이웃들이 있다. 전직 각료 200여명이 모였다는데 1인당 10만원씩만 냈어도 2,000여만원. 이 돈으로 어느 이름 없는(!)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방문해 그들을 도와주면서 따끈한 국수 한 그릇씩이라도 나눠 먹었다면 얼마나 훈훈한, 그리고
훌륭한 새해의 선물이 될까, 좋은 일 해서 좋고 남 보기도 좋고, 타의 모범이 되어 좋고 타인으로부터 존경받아 좋고. 어디 좋은 일이 한 두가지인가? 이거야 말로 일석 육조,칠조가 아니고 무엇인가.

물론 요즘은 부잣집 아이들도 생일잔치를 호텔에서 한다고 한다. 하물며 전직 대통령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범부(凡夫)와는 구별이 돼야 한다. 잘 사는 10% 보다 못 사는 50%를 더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돼 주기를 우리 국민은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렵고 노숙자, 실업자 문제가 화급한 이 상황에 호화 호텔에서의 호화 파티라니…거기다 총선이 다가오는 이 시점에 구정권의 결집력을 과시하기 위한 모임이라는 등의 오해의 소지를 만들지 않았어야 했다.

순수하게 가식 없이 불우이웃과 함께 국수 파티라고 하면서 그들을 위로하는 것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애국애족하는 길이 아니었나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자니 리 (우드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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