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추방되는 불법체류 형사 피의자

2004-01-0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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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형사 사건에 연루되어 법원에 오는 한국인 피의자들 대부분이 불법체류 신분인 사람들이다. 통계를 내보지는 않았지만 나의 직업상의 체감으로는 적어도 80% 정도는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왜 이런 사람이 주로 형사사건에 연루되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들이 미국생활의 기간이 짧다 보니 이곳 문화에 익숙하지 못해서 본의 아니게 사건에 관련되거나 이들이 갖는 직업이 범법 위험에 노출된 것이 원인이 아닐까 짐작할 따름이다.

체류 신분이 합법인지 아닌지는 연방법의 관할에 속하는 일이다. 따라서 여태까지는 경찰이나 지방 검찰 또는 지방 법원이 피의자의 체류 신분에 관해서는 개의치 않았다. 경찰에 체포되는 일이 있어도 이민법상의 신분에 관해서는 불문에 부쳐왔다.


이런 경향이 9.11사건 이후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지방정부의 사법기관이 불법체류 신분인 사람이 연관되었을 경우에 이 사실을 이민국에 통보하도록 하는 법안까지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지방정부는 이런 법의 집행을 반대해 왔고 뉴욕시만 하더라도 경찰이 이런 문제로 이민국에 통보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던 것이 몇일 전, 이곳 퀸즈 형사법원에서 처음으로 불법체류 신분인 형사피고인을 이민국이 신병을 인수하고 추방절차에 들어가도록 한 놀라운 사건이 있었다. 여태까지는 형사피고인이 중범 혐의나 A급 경(輕)형사범으로 선고받을 경우에 이민국의 추방 대상이 된다고 규정되어 있을 뿐, 실제로 법원이 개입해서 추방조치를 도와준 적은 없다.

추방 대상이라고 할 경우에는 이런 죄를 저지른 영주권자 또는 합법 체류자라도 추방할 수 있다는 뜻이며, 불법체류자의 경우에는 어느 경우에도 늘 추방 대상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다만 이민국이 모르고 있었거나 손을 쓰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이번 이 첫 추방조치에 걸려든 사람의 사건은 의외로 가벼운 경범 사건이 그 시작다. 이 사람이 식당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고 가진 돈이 없어 평소 알고 지내는 식당이라 외상으로 할 것을 부탁했는데 이를 거절한 식당이 경찰에 신고하게 되어 무전취식 혐의로 입건된 것이었다.

검찰의 지문조회 결과 이 사람이 2년 전에 폭행사건으로 입건되었던 미결사건이 있어 체포영장이 발급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으므로 법원에서 얼마간의 보석금이 책정되었다. 보석금을 지불할 수 없어 감방에 갇혀서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일주일 뒤 첫 재판이 열리던 날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의외의 통고를 받게 되었다.

법원은 이 사건의 결과에 상관 없이 재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이민국이 이 사람을 불법체류 혐의로 신병을 인수할 것이라고 통보하는 것이었다. 이민국이 불법체류자인 이 사람의 신병을 인수하고 추방조치를 하겠다는 뜻이다. 여태까지 없었던 일이었다.

이 사람이 연관된 두 가지 사건, 즉 2년 전의 폭행사건이나 이번에 생긴 무전취식 혐의도 형사범죄가 아닌 위반급의 선고로 끝날 수 있는 미미한 사건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2년 전 사건의 재판을 끝내지 않고 뭉개버린 것 때문에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있었고 문제를 크게 만들어버린 것 같다. 범법사건 보다 도망자가 된 것이 더 큰 죄를 만든 것이다. 이래서 검찰
이 이민국에 통고를 하는 것으로 분류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수개월 전, 한 한국유학생이 교통위반으로 티켓을 받았다가 정해진 날 법원에 출두하지 않아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있는 상태에서 한국을 다녀오다가 LA공항에서 이 기록이 나타나 추방조치를 받은 사건이 있었다.

교통규칙 위반이라면 형사사건이 아닌 위반 사건이다. 이제 이런 정도의 위반 사건이라도 법원에 출두하지 않으면 당연히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영장이 발부되면 전국의 국제공항의 출입국 사열에서 조회가 가능하도록 데이터가 준비되어 있다. 도망자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기록이 나올 경우에 이민관은 이를 이유로 입국을 거절할 권한을 가지고 있고 또한 현장에서 체포될 수도 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이런 위반 티켓을 받았다가 해결하지 않은 채로 뭉개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미 날짜가 지났더라도 하루속히 법원에 출두해서 해결하지 않으면 생각하지 않은 봉변을 당할 수 있다. 그리고 형사사건으로 입건된 적이 있으나 확실한 결과를 잘 알지 못하고 있으면 당시의 법원에 가서 사건 기록을 확인하고 조치를 해야 한다.

불법체류 신분인 사람들이 왜 더 많이 형사법원에 인연을 갖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제 형사법원이라는 곳도 이민국의 추방조치로 직결될 수 있는 사법기관인 만큼 이제 형사법원도 안전지대는 아님을 알고 있어야 된다. 불법체류자의 영역이 차차 좁아지고 있는 모양이다. 준법생활을 하는 길밖에 없다.

박중돈(법정통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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