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해가 쥐어주는 말

2004-01-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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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을 세우는데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계획하는 것이다”라는 서양 격언이 있다.내가 스쳐온 모든 것들을 임오년의 땅거미 속에 묻으며 갑신년의 새해가 밝았다. 지난 것들은 이젠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부끄럽고 아쉽지만 세월 속에 과거의 나를 묻어버리고 앞에 펼쳐진 새로운 365일, 52만5,600분(分)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계획하고 각오를 다져야 하는 새해이다.

산다는 것은 하늘이 허락한 이 제한된 절대적 시간에 내 목숨의 의미를 담는 것이다. 일년을 생각하기에 앞서 남은 생(生)을 어떻게 살다가 무엇을 새겨놓고 갈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순서요, 올바른 계획일 것이다.

그것은 전혀 나의 몫이다. 목표가 없으면 계획을 세울 수 없다. “내가 내 인생을 계획하지 않으면 남이 내 인생을 계획한다” 스티븐 코비의 말이다. 호흡이 멈출 때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휘슬이 울릴 때까지 결국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서도 안되는 공부는 무엇인가? 싸워야 할 대상은 무엇인가? 내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자유인! 그것은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신 스스로를 통제하고 스스로를 엄격히 다스리는 사람이요, 냉철한 이성과 강한 의지력으로 마음속에 떠오르는 오욕칠정(五欲七情)의 무지개를 끊임없이 지우며 지배하는 사람이요, 자기를 이기는 극기(克己) 끝에 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의 사람이 아닐까?

목표를 갖고 그걸 계획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요, 비로소 존재 의미를 깨닫는 것이다. 목표는 결심이자 비전이다. 그러나 자기만의 목표는 야심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함께 아름다운 유익을 함께 추구하는 목표는 고상한 꿈이다. 꿈이 없는 사람은 허무하고 피곤하다.

꿈! 그것은 아름다운 비전이 되어 하루를 살아도 기쁨이 넘치고 영원한 젊음을 느낄 수 있게 한다.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부끄럽지만 내 나름대로 그러한 추구의 작은 일부분이다.그러한 결심과 믿음을 가지고 영원히 지속할 것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 ‘평생업’을 갖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요, 시간에게 굴복당하지 않는 유일의 길이기도 하다. ‘진정한 자유인’의 길을 남은 생(生)의 지표로 삼고 나는 올해 ‘답게’라고 이름지은 말(馬) 한 필과 ‘그래도’라는 이름의 채찍 하나를 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위해 준비했다.

존재한다는 것은 제 구실을 다하는 것이다. 내가 존재할 때, 이 우주도 의미가 있다. 제 구실을 다할 때 비로소 보람과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답게’ 산다는 절대 명제를 삼은 이상 포기도 변명도 핑계도 있을 수 없기에 ‘그래도’ 해야 한다는 채찍으로 나를 다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솔직하고 정직하면 상처를 받을지 모른다. 내 마음에 안 들면 미워하는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주려고 생각하면 아까운 마음이 들 지도 모른다. 어떠한 부정적 장애물이 나를 가로막을 지도 모른다.‘그래도’ 나는 솔직해야 하고 사랑해야 하고 용서해야 하고 제일 좋은 것으로 주어야 하고 최선을 다해 극복해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나를 이기는 일이요,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이요, 내가 사는 길이다.

타인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기에 원만한 대인관계를 위한 지혜의 금언(金言)도 마음에 새겨야 하고 목표를 향한 철저하고 효율적 시간관리를 위해 지혜도 필요하다. ‘생각은 높게 행동은 낮게’를 나의 좌우명으로 삼고 또 힘든 나그네 길, 삶의 전쟁터에서 내 마음이 외롭거나 괴로울 때 힘이 되고 빛이 되고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어줄 좌우서(座右書)로 ‘성경’과 내 아버지가 역주(譯註)하신 홍자성의 ‘채근담’을 내 곁에 챙겨 놓았다.

이 책들은 ‘앎’을 ‘행’으로 연결시켜 주는 영(靈)의 양식이요, 이런 책을 통해 맑은 몸을 가지고 맑은 마음으로 사는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5:3)
올 한 해도 이 좌우명을 마음에 새기고 가볍게 걸어가고 싶다. 호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고 휘파람을 불면서 느리게 걸어가고 싶다.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직시하며 일등을 해야 의미를 느끼는 패자 보다 꼴찌를 해도 의미를 찾는 승자로 살고 싶다. 두 눈에 핏발을 세워 찾으면 안 보이는 게 행복이요, 가린 얼굴로 시침을 떼고 있는 게 행복이다.

‘예’ ‘아니오’를 당당하게 하면서 단순하게 살고 싶다. 늙어가지 말고 그렇게 익어가고 싶다. 마음도 없고 모양도 스스로 만들지 않는 물(水)과 같이 살고 싶다.‘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사중득활(死中得活) 대사대활(大死大活) 죽은 가운데 살고 크게 죽을수록 크게 얻는다’고 새해가 나에게 쥐어 주는 귀한 말이다.


조광렬(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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