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시나무 새

2004-01-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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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은은한 새벽의 절간! 그렇게 꿇어앉아 밤을 지새운 것 같은 부처님 앞의 스님! 스님은 부처님 앞에 장삼을 벗어놓고 새벽 산길을 고꾸라질 듯 달려 내려간다. 누가, 무슨 힘이, 이 스님을 끌어당기고 있을까!

어두운 밤의 성당, 가냘프게 스며드는 달빛에 고요한 성모 마리아상, 그 앞에 쓰러질 듯 엎어지는 신부. 그리고 얼마 신부는 로마칼라를 벗어 성모님 목에 걸어놓고 눈보라 몰아치는 광야를 달려간다.

누가, 무슨 힘이, 이 신부를 이토록 몸부림 치게 하고 있단 말인가!바로 사랑의 힘이다. 이 세상 천지에 하나님과의 약속도 부처님과의 다짐도 저버리고 달려갈 수 있는 곳이란 사랑 밖에는 없다. 사랑이란 만유인력 가운데 가장 강한 흡인력이요, 우주만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존재요, 세상 천지 가운데 가장 신선한 것, 바로 이성간의 사랑이다.


부모 형제간의 사랑은 사랑 이전의 천륜이요, 친구 이웃간의 사랑은 아름다운 세속적 속성이다. 그러나 이성간의 사랑은 심장의 아픔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사랑이 사라져가고 있다. 가슴 속에 있어야 할 사랑이 머리 속에 옮겨지고 있다. 소위 경쟁의 세계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사랑의 현주소가 심장이 아닌 머리 꼭대기에 올라 앉아있는 것을 보고 나는 전율한다.

결사적으로 머리를 돌려야먀만, 그래야만 살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경쟁이란 생태계를 나도 안다. 그러나 미처 돌아가는 머리가 잠시 쉬어갈 곳, 쉬면서 안식을 구하고 경쟁에 필요한 재생산의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심장이 있는 곳, 가슴인데 그 곳은 녹슬어 가고 있다. 교회도, 절간도, 노래방도 내 가슴을 대신할 수는 없다.

누가 말했던가.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보라 하지 않았던가. 사랑은 가슴으로 하는 것이지 머리를 굴려서 되는 것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 차갑게 녹슬어 가는 내 심장의 문을 연다. 그곳에는 어떠한 신앙적 잡신도 잠 재우지 말라, 오직 사랑만을 싹 틔우고 불태운다. 청춘 남녀는 그곳에 첫사랑을 불태우고 부부간에는 아내와 서방님 사랑만을 잠재우고 불태우라.

내 심장, 어린아이 머리만한 공간, 이 공간만은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말라! 예수에게도, 서가에게도, 그리고 그 어느 위대한 존재에게도 나의 심장만은 내주지 않고 양보하지 않는다. 오직 사랑을 위해서, 아니 있어야 할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생명(심장) 다할 때까지 당신만을 사랑해”라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사랑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가시나무 새> 소설(이태리 콜린 맥클로우)에서 시작하여 TV, 영화 등으로 너무나 유명한 가시나무 새.이 작품은 오늘에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나에게는 더 그렇다. 일생을 통해 오직 한 번 밖에 울지 않는다는 전설의 새, 가시나무 새. 그 울음 소리는 이 세상 어떤 소리 보다도 아름다운 것이었다.

엄마의 품속에서 성장하여 둥지를 떠나는 그 순간부터 그 새는 가시나무를 찾아 헤맨다. 이 나무에서 저 나무,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찾아 헤맨다. 그러다가 가장 길고 날카로운 가시를 찾는다. 새는 기쁜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의 가슴을 풍만해 오도록 힘껏 부풀려 그 가슴을 날카로운 가시에 깊숙히 찔리게 한다. 그것도 지긋이.

죽어가는 새는 고통을 초월하면서 이제까지 그토록 참아온 노래를 부른다. 종달새나 나이팅게일 보다도 더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와 목숨을 맞바꾼 것이다. 그리하여 온 세상은 침묵 속에서 귀를 기울이고 저 천상의 신까지도 미소 짓는다.


가시나무 새! 그는 노래로 말하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위대한 고통을 통해서만이 얻을 수 있다”고.소설 <가시나무 새>는 여러 계층에서 서로 상반된 평가가 나온 소설로도 유명하다. 소설의 주인공인 신부는 시골의 평신부에서 추기경, 그리고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메기’라는 한
여인을 가슴에 가득 안고 죽어갔다.

로마 교황법으로는 파면이라는 단죄를 받아야 했고, 신부라는 세속적 고정관념 속에서는 파렴치한 인간으로 지탄도 받았어야 했다. 그러나 이 모든 날아오는 돌을 감안하더라도 신부의 사랑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만일 신부가 가시나무 새와 같은 고통을 극복하지 못하고 마칼타를 십자가에 걸어놓고 사랑의 도피행각을 취했더라면 그는 눈만 뜨면 조잘대는 참새에 지나지 않았었을 것이다.왜소한 가시나무 새가 천지를 잠 재우고 ‘신’까지 미소짓게 한 일생 한 번의 노래는 목숨을 담보로 한 사랑의 극치이다.

백춘기(골동품 복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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