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살아있는 우리는...

2003-12-31 (수)
크게 작게
지구가 어지럽다, 아무래도 지구가 단단히 화가 났나보다.
지난 연말 발생한 이란 남동부 케르만 주 밤(Bam) 시(市)의 지진으로 4만명 이상이 숨지고 테헤란에서도 확률 95%로 강진 발생이 전망되고 있는 가운데 인도네시아, 일본 등에서도 강진이 잇따라 발생하여 지구촌에 지진 공포가 확대되고 있다.

산불로 황폐화된 미국 캘리포니아 협곡에서는 12월25일 폭우로 산사태가 나서 14명이 사망한 가운데 미 연방기상청은 폭우와 강풍을 예고, 제 2의 참사가 우려되고 있다고 밝혔다. 작년 한 해 전세계적으로 지진, 홍수, 이상 기후 등 자연재해로 사망한 사람이 그 전 해보다 5배 이상이라고 최근 세계 최대의 보험회사 독일 뮌헨리가 발표하기도 했다.

청천벽력같은 일들이 아침에 눈뜨면 생겨나 있고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죽어가고 있다. 항공기고 유람선이고 테러 위협은 존재하고 지구상 어디라도 안전하다고 할 곳이 없다.전쟁, 테러의 인재(人災)에다 괴질, 지진, 홍수 등의 천재(天災)까지 겹쳐 사람들은 새해가 왔어도 산뜻한 기분을 갖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하나밖에 없는 지구를 너무나 업수히 여기고 원자폭탄까지 투하하는 등 훼손시켜서 더이상 인간의 작태를 못받아 들이고 있는 모양이다. 아무리 궂은 것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이던 대지가 이제 거부하는 것이다. 지구 내부에 급격한 지각 변동이 생기고 그 충격으로 생긴 지진파가 지표면까지 전해져 대륙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몸을 뒤틀며 더이상 나를 괴롭히지 말라고 하소연한다.

이것이 심해지면 세계는 격심한 지진과 홍수에 시달리다 대륙의 위치가 바뀌고 대규모 해일이 육지를 덮치면 기온도 바뀌고 만년설은 녹으면서 해면은 상승하고 수천 년에 걸친 문명의 진보는 산산조각 나면서 지구상에서 온전히 사라질 것이다.

사라진 초고대 문명의 발자취를 찾아나선 작가 그레이엄 핸콕의 저서 <신의 지문>에 보면 ‘마지막 빙하시대는 기원전 1만4,500년에서 기원전 1만2,500년 사이에 끝났다. 기원전 1만 3,000여년부터 기원전 9,500년 사이는 비와 홍수의 시대였고 기원전 7,000년까지는 건조기였다. 그후 기원전 3,000년까지 비가 내렸지만 횟수가 줄어들며 다시 건조기가 찾아와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간빙기이긴 하지만 교단에 있는 나와 수업을 듣는 너희들 세대에는 절대로 빙하기가 안 오니 안심하고 살아라”고 강의하신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긴 하지만 천재가 하도 요란하게 발생하니 지구를 너무 박대한 탓에 그 벌을 받고 있는 것같다.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곳은 세계에서 가장 안락한 장소라고 생각되었다. 침대는 바닥 위에 있었고 바닥은 단단한 기반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아무 경고도 없이 그곳은 구토를 느낄 것같은 롤러 코스터로 변했고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1995년 1월17일 일본 고베 대지진 체험 리포트 인용)이라크의 운전기사 호세인 에비드 카잘은 새해 소망을 “무엇보다 치안이 안정돼 도둑이나 강도, 폭탄 걱정 없이 보냈으면 좋겠다. 전기도 제대로 들어와 모든 생활이 정상화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며 외신은 전한다.

위의 예처럼 천재와 인재를 당한 사람들의 처지를 살펴보면 현재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아무리 큰 일이라도 지극히 사소한 일일 것이다.
육신의 나이가 하나씩 보태진 새해이다.

새로운 출발, 새로운 희망을 주는 새해에 저마다 좋은 계획과 결심들이 많을 것이다.계획이전에 먼저 인간들의 고해성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터지고 깨지고 엎어지는 것들을 듣고 보면서 무엇을 받아들였고 내 속에서는 무엇이 변화되고 있는 가를 주시하자.


만신창이 지구상에서 용케도 살아가고 있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신년 화두로 삼아보자.

민병임(편집국 부국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