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묵은 세배와 복조리

2003-12-3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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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30일. 한해가 마지막 전날까지 밀려왔다. 어느새 세밑이다. 흥청망청 술잔치로 송년을 보낸다. 지난날을 조용히 되돌아보는 이들도 있다. 한해를 보내는 모습이다. 어느덧 갑신년 새해가 다가온다. 새로운 계획을 세워본다. 올해 못한 일들을 꼭 이루고자 다짐도 한다. 새해를 맞이하는 준비가 한창이다. 연말연시 한인사회의 풍경이다.

옛사람들은 연말연시를 어떻게 보냈을까?
옛사람들의 섣달 그믐날은 묵은 일들을 정리하는 날이었다. 액을 막는 날이기도 했다. 새해 첫날인 설날에는 다가오는 복을 맞아들이는 풍습이 있었다.섣달 그믐날에는 밤늦도록 ‘묵은세배’를 올렸다. 어른들 덕분에 한해를 잘 보냈다는 인사다. 1월1일 설날에는 많은 음식을 만드는데 이를 ‘세찬’이라 했다. 조선시대에는 윗사람이나 상급관리가 아랫사람에게 세찬을 보냈다.

주로 마른 생선, 밤, 곶감, 배, 술 같은 토산품들이 보내졌다. 관청의 관리들은 ‘세함’이라는 풍속을 행했다. 종이에 이름을 적어 관청이나 스승의 집에 전하며 새해 문안 인사를 하는 것이다.


섣달 그믐날 밤에는 밤새도록 불을 밝혔다. 묵은 것을 불로 태우고 새해를 맞는다는 송구영신의 의미였다. 섣달 그믐날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 했다. 때문에 밤새도록 윷놀이를 하거나 옛날 이야기를 하며 밤을 세웠다. 이날 자는 잠은 영원한 잠인 죽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섣달 그믐날에는 그 해의 모든 빚을 청산하기도 했다. 빚을 갚고 빚을 받으러 다녔다. 이날 청산하지 못하면 정월 보름까지는 갚지도 않고 독촉도 하지 않는 것이 상례였다.

설날 이른 아침에 빠짐 없이 듣던 소리는 ‘복조리 사려’하는 복조리 장수의 외침이었다. 1년 동안 쓸 조리를 한꺼번에 사서 벽에 걸어둔다. 그러면 복이 들어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조리 안으로 들어온 복이 떨어지지 말라고 찰밥이나 떡을 넣어두기도 했다. 초하룻날 밤에는 ‘야광귀신 쫓기’라는 풍속이 있었다. 정월 초하룻날 야광이라는 귀신이 민가로 내려
와 사람들의 신을 신어보고 발에 맞는 것을 신고 간다고 알고있었다.

신을 잃은 사람은 1년 동안 불길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신을 방이나 다락에 넣고 일찍 잔다. 야광귀신을 막기 위해 대문을 일찍 잠그고 때로는 금줄을 쳐서 쫓는다. 체를 마루 벽이나 뜰에 걸어두면 야광귀가 집안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믿었다. 체의 구멍을 세어보다 날이 밝는다고 전해졌기 때문이다.

설날 아침에는 조상께 떡국을 끓여 차례를 지낸다. 설빔을 입고 세배도 했다. 설날에 일가친척과 친구를 만나면 덕담도 나눴다. 새해에는 개인의 신수를 점쳐보기 위해 ‘오행점’을 보거나 ‘윷점’을 치고 ‘토정비결’을 보았다. ‘청참’이라는 신수 보기도 있었다. 이는 새해 첫 새벽에 거리에 나가 방향도 없이 다니다가 사람이나 짐승의 소리든 처음 들리는 소
리로 그해의 신수를 점치는 것이다.

까치소리를 들으면 그 해는 풍년이고 행운이 온다. 참새나 까마귀 소리를 들으면 흉년이 들고 불행이 올 조짐이라고 믿었다. 먼데서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 풍년도 흉년도 아닌 평년작이 들고 행운도 불행도 없이 지낸다고 한다.

이제, 섣달 그믐날과 설날을 앞두고 있다. 수많은 송년과 신념모임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그저 친하다고 술자리가 만들어진다. 감사의 선물도 오가지만 잘 봐 달라고 선물을 돌리기도 한다. 체면치레로 마음에도 없는 인사를 하는 이들도 보인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모습들이다. 물론, 고마운 마음을 서로 나누는 이들도 꾀 있다.

지금은 예전보다 모든 것이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사람 사는 정은 예전 같지 않은 듯하다. 서로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정감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연말연시.
옛 사람들의 정겨움을 생각하면서 연말연시를 보냈으면 하는 바램이다.
새해 복(福) 많이 받으세요!!

연창흠(편집위원)
chye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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