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송년엔 친구가 그립다

2003-12-30 (화)
크게 작게
송구영신(送舊迎新)을 맞으면 으례히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그 첫째가 한 살을 더 먹어야 한다는 씁쓸함이다. 둘째는 고국 고향과 점점 멀어져 가는 느낌이다. 세번째는 가까운 친구가 옆에 없다는 점이다.
아주 젊었을 때는 전혀 느낄 수 없던 상념이다. 그저 가족이나 옆에 있으면 그만이었고, 주머니 속만 비어있지 않으면 외로움 따윈 없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가족이 있고 주머니가 비지 않았어도 마음이 다 덮어지지 않는다. 흙덩어리를 비집고 돋는 새싹처럼 다른 생각이 이는 것이다. 나이에서 오는 고독감의 일종일 지 모른다.

서울에 있는 불○(?)친구는 연말 내내 서울의 리얼한 단편들을 이메일로 보내 왔다. 웃음도 있고, 욕도 있고, 시, 노래, 그림 등 별 것이 다 들어 있다.나도 질세라 이색적인 뉴욕 면모를 단편적으로 실려 보낸다. 얼만큼 진담인지 모르겠는데 요즈음은 내 이메일 받아보는 재미로 출근한다고....
그보다는 전에는 잘 해야 일년에 한 두번 전화를 걸어 안부나 묻는 게 고작이었으나 뜻밖의 기물(奇物) 컴퓨터를 접해, 막혔던 대화가 툭 터지고 보니 좋았던 게 분명하다. 그 보다는 긴긴 때가 묻은 친구의 정이 그리웠겠지.


둘째 가라면 서러워해야 할 친구가 또 하나 몬트리얼에 살고 있다. 연말, 역시 이메일을 통하여 전해오길 “꼼짝없이 앞으로 6개월은 눈과 혹한 속에 갇혀 살게 됐다”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해 왔다. 봄, 여름 동안은 캐나다야 말로 지상 천국이라고 자랑을 늘어놓던 친구인데 말이다.전에는 가끔 그 곳에 없다는 진로 소주를 사 보냈으나 요즈음은 우체국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이렇게 서울과 캐나다에는 간을 주고 쓸개를 받을 친구가 있으나 이곳에서는 20여년을 살았으나 때때로 불쑥 자원방래(自遠方來, 혹은 自近方來) 할만한 친구를 못 두었다.

옛 말에 <덕불고(德不孤) 필유린(必有隣)>(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느니라))고 하지 않던가. 평소에 낯빛을 온화하게 갖고 말씨를 부드럽게 하였더라면 세모(歲暮)에 오라 가라며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를 친구가 왜 없었겠는가. 오직 부덕의 소치이다.

우정의 지고한 예를 중국 고사에서 한 번 찾아보자.
백아(伯牙)는 거문고를 잘 탔고 종자기(鍾子期)는 그 거문고 소리를 잘 알아 들었다. 백아가 거문고를 탈 때에 그 뜻이 높은 산에 있으면, “좋구나! 높고 큰 태산 같구나” 하고, 그 뜻이 또 흐르는 물에 있으면 “좋구나1 넘실 넘실 출렁이는 큰 강물 같구나”라고 하여 백아가 생각하는 바를 종자기가 반드시 알아 차렸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가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어버리고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으니, 이는 들려줄 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우정(友情)이란 빛나는 것이다. 마음에 쾌(快)한 것은 벗만한 게 없다고 했다. 쾌한 벗과의 쾌한 즐거움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한 게 없다고 했던가.옆에 가까운 친구가 그립다.


이 영 소 (뉴저지 포트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