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해는 떠 오른다

2003-12-3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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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앞두고 지구촌 곳곳에서 엄청난 사고와 사건들이 일어나 우리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다. 폭우와 폭설 등 천연재해가 삶을 마비시키는가 하면, 각종 테러사건이 끊이지 않고 발생, 수많은 생명이 죽어가고 있다. 또 독감은 물론 사스 등 신종전염병으로도 애꿎은 목숨이 죽어가 삶에 대한 불안과 공포감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그 뿐인가. 이란의 밤시에서는 강진이 일어나 매몰, 행방불명, 실종자까지 합쳐 인구의 70%에 해당하는 4만명이 하루아침에 희생당해 세계를 경악과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세계 모든 국가가 나설 만큼 이 사고는 너무나 엄청나고 처참해 우리를 소스라치게 한다. 우리가 살고있는 미국에서도 테러위협 뿐 아니라 광우병 파동까지 겹쳐 하루하
루 살아가는 일이 정말 버거운 상황이다.

더구나 하루 벌어서 먹고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파동이 일 때마다 경제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심히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게 당면한 현실이다. 당장 연말을 앞두고 폭설이 대목경기를 망치더니 이제는 겨울에 비까지 와 상인들을 한결 실망스럽게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또 테러에다 광우병까지 나와 영세민으로서 이 어려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암담하기만 할뿐이다.


눈이 와서 안되고 바람불고 비와서 안되고 차라리 겨울에는 눈이라도 오면 모를까 비까지 와 왜 장사를 이렇게 망치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울 일이다. 게다가 테러위협에 대한 경고까지 나와 단속이 심하니 장사는 더 안될 수밖에 없다. 교통이 밀리고 심리적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이 위축돼 이래저래 살기가 어려운 노릇이다.

특히나 맨하탄 브로드웨이에서 장사하는 한인 경우 요즈음은 어느 때 보다도 한숨소리가 깊다. 날씨가 고르지 못한데다 테러에 광우병 파동까지 겹쳐 타주에서 오는 장사꾼은 물론 관광객과 보따리 장수가 줄어들어 손꼽아 기다리던 연말대목을 망쳤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불경기에다 심한 경쟁으로 장사가 안되던 식당, 식품점, 델리 가게 등도 광우병 때문에 고객들
이 고기를 기피해 더욱 울상이 되어 있다.

다른 업종들도 자연 영향을 받아 경기가 어려운 건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또 무엇이 나와 장사를 망치고 생활을 위협할까 미리부터 겁나고 불안해하는 게 요즈음 한인들의 심리이다.

그러나 오늘은 좀 힘들더라도 참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내일을 새롭게 기약해야 한다. ‘인생은 속아서 산다’는 말이 있듯 속을 때 속을 값이라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기대를 하면서도 속고, 또 속고 그러면서도 희망을 갖고 사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이요, 절망이다. 지나온 날들을 돌아볼 때 기대만큼 모든 걸 이루지 못했으니 지금까지 삶이 속아서 산 것 만은 틀림없다. 물론 어떤 일이든 백 퍼센트 만족이란 기대하기 어렵다. 애쓰고 노력하는 가운데 조그만 거라도 이루면 보람이 있고 기쁨이 있는 것이다.

‘비온 뒤에 땅이 더 굳는다’고 비가 오고 눈이 오고 천둥이 친 뒤에는 반드시 해가 솟고 무지개가 떠오른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절망 뒤에는 반드시 희망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희망만 있으면 절망은 두려울 일이 아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과 같이 우리는 이 말을 항상 머리 속에 새기면서 온갖 어려움도 참아내며 살아왔다. 미국에 이민 와서도 오로지 ‘하면 된다’는 희망 속에서 지금까지 모든 걸 이뤄내며 살았다. 덕담을 나누고 새해를 설계해야 할 연말연시에 한인들의 마음은 거의 절망에 가까울 정도로 위축돼 있다. 그래도 우리는 죽을 때 죽을 값이라도 분연히 일어서야 한다.


이대로 주저앉아서 좌절만 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내일은 좀 더 나을 거라는 희망 속에서 새해를 맞아야 한다. 내년에는 경기가 좀 더 호전될 거라는 전망도 있지 않은가. 새해는 자연재해나 테러, 광우병 같은 것이 우리를 위협한다 해도 위축되거나 좌절하지 말자.

희망이 있는 한 이런 것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늘의 시련은 밝은 내일을 위한 힘이요, 강한 도전이다. 새해여 오라! 어떠한 일이든 우리는 다 이겨낼 방패를 갖고 기다리고 있다.


여주영(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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