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 한 사람

2003-12-3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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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무리하는 길목에 선 자에겐 어김없이 찾아와야 하는 질문이 있는 것 같다. 적어도 1년에 한번쯤이라도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등... 어떤 사람은 “한 때기의 밭을 갈든, 정원을 가꾸든 내가 살던 세상이 나로 인해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세상으로 바뀌는 것이라고 한 것을 기억한다. 그렇게 산다고 하면 후회없는 인생일 것
이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만은 않은 것은 웨스터민스터 대성당의 어느 묘비의 글을 보아서도 알 것 같다.

그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 했다. “나는 살면서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무도 바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죽음을 눈앞에 둔 나는 세상을 바꾸려는 것 보다 다른 사람들을 바꾸려고 하는 것 보다 바로 내 자신이 바뀌어야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랬다면 세상이 그리고 주
변사람들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라고 말이다.

진정한 개혁은 바로 내가 바뀌는 것으로부터이고 나 한 사람이 바뀌는 것, 그것이 바로 주위사람, 그리고 세상이 바뀌는 시작인 것이라는 것은 단적으로 가르치는 묘비문인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이 바뀌는 노력은 외면한 채 얼마나 세상과 주위사람들을 변화시키려는 데에만, 그리고 주위의 사랑과 세상을 판단하고 지적하
는 데만 분주하고 열을 올리는지 모른다.


그런 가운데 나는 지난 몇년 간 이런 세상과는 달리 정말 한 재소자의 조용하고 진실된 변화로 그의 주위와 주변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삶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기척을 혼자 보며 너무나도 벅찬 감동 속에 빠지는 경험을 했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약 13,4년이 되었다. 만 17살의 여리여리한 청소년이었고 그리고 자신의 삶에 완벽할 정도로 책임감과 성실함에다 수재급인 그런 청소년이었지만 그는 종신형을 받게 된 형편에서 마지막 판결을 앞둔 구치소에서 나를 만나게 되었다.

결국은 종신형을 받고 수감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차마 입으로 다 언급할 수 없을 정도의 시련과 아픔은 그에게 벼랑끝에 있는 자의 삶의 절망과 고통을 느끼게 했다. 자신의 일로 인한 형의 정신적 고통과 장애,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정신질환 증세, 그리고 사랑하는 엄마의 발병, 그리고 그로인한 죽음... 그리고 엄마의 죽음 앞에서도 마음놓고 애통해 할 수 없고 그
리고 마지막도 지켜볼 수 없었던 죽음과도 같은 아픔의 시간들을 함께 옆에서 지켜보며 그의 아픔의 끝자락만을 느꼈을 뿐인데도 “살아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시련이?”라는 말밖에 나올 수 없었다.

그런 그에 대해 지난 몇년 동안 내 눈에 보이고 들리는 모습과 이야기는 사람 속에 있는 선하고 아름다운 가능성과 잠재력은 무한하며 그리고 그것은 환경과 조건을 초월하는 무서운 힘이 있으며 세상의 거짓된 것과 잘못된 것을 부끄럽게 하고 당당하게 아름답게 승리하게까지 한다 라는 삶의 최고의 진실과 생명을 내게 보여주고 가르쳐 주었다.

지난 십여년 동안 만난 모든 재소자 중에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낸 사람이지만 내가 아는 어떤 사람보다 기품있는 인격으로 내세움 없이 자랑없이, 소리 없이 주위의 사람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함께 하며 그들의 위로나 힘이 되어주는... 그를 만난 모든 재소자는 내게 말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형이라 부르지 않아 곤욕을 치렀지만 그는 진심으로 형이라 부를만한 사람이예요” “그 형을 존경해요”라고…그의 삶은 내게 한 사람의 변화가 환경과 조건을 초월하고 주위 사람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조용하지만 무서운(?) 삶의 진실과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인생의 참된 가치와 의미를 가르쳐주는 나의 인생의 선생인 것이다.


이상숙(뉴패밀리 앤 포커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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