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불멸의 히트상품’

2003-12-3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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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동료 기자가 선물이라며 비닐 봉투를 하나 건넸다. 그 비닐 포장지 안에는 골목길 천막 안에서 녹여먹는 ‘달고나’와 ‘뽑기’ 만큼이나 한국인에게 감상적이고 다감한 ‘모나미’ 볼펜 다섯 자루가 들어 있었다. 검정색 네 자루에 파랑색 한 자루, 그리고 학교 선생님께서 채점할 때 쓰시던 빨간색 한 자루...

비닐 포장지 위에 적힌 ‘모나미 153 볼펜, 불멸의 히트상품, Since 1963’를 읽고 ‘불멸의 히트상품’이라는 표현에 순간적으로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연말이 되면 머리 속에 온통 선물 생각밖에 없지만 직장인들은 연말이 되면 돈 생각을 가장 먼저 하게 된다. ‘내가 올해는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을까? 새해에는 절약하며 돈 좀 모아야지...올 연말에는 보너스 좀 나올까?’ 등등...


연말이라는 현실과 ‘불멸의 히트상품 모나미 펜’이 전해준 감상 때문이었는지 문득 얼마전 본지를 통해서 읽은 송삼석 모나미 창업주 자서전의 한 부분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송 회장이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과의 만남을 얘기한 부분이었다.

1968년 이 회장이 기업체 대표 30여명을 골프장으로 초청, 친선 골프대회를 열었는데 티오프를 하기에 앞서 삼성의 임원 한 명이 이 회장에게 회장님 조(1조) 편성을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골프장 도착 순서대로 해라며 간단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골프를 치는 사람, 또는 원칙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면 이 회장의 이 대답이 얼마나 명쾌한 한 마디였는가를 느낄 수 있으리라. 비록 어느 하루 골프장에서 있었던 일이었지만 이 회장의 말이야말로 얼마전 최인호씨의 베스트셀러 ‘상도’를 통해 대중에게 잘 알려진 조선시대 거상(巨商) 임상옥씨가 남긴 ‘장사는 이윤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에
버금가는 잔잔한 감동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인간은 모두 독특하고 다르기에 세상의 모든 사람이 이병철 회장이나 임상옥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그들의 좋은 점을 배울 수는 있다.
’불멸의 히트상품’이 오늘 기자에게 준 교훈이다.

정지원 기자 <취재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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