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올해의 나의 결산

2003-12-2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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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에 계획 없이 무턱대고 나서서 되는 일은 없다.

좋은 결실을 위해서라면 사랑에서도 그렇고 부부 사이에서도 상대방에게 정성을 들이고 보살펴주는 마음이 지극해야 한다.

보살핌이란 아부성의 대화나 꺾어진 표정이 아니다. 정성이고 최선을 바치는 것이다.


지난 삼년여 동안 한국일보 문학교실에서 성심을 다 해 강의를 해 왔다.

오는 분들도 참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어느 분은 일년, 일년 반, 또 어떤 사람은 이년이 가깝도록 결석 없이 문학이란 학문에 얼굴을 비비면서 열심히 공부를 했다.

처음에 문학교실을 찾아오는 나이 든 여러분들의 모습을 보면 마른 장작 껍질처럼 모양없이 갈라진 마음을 보게 된다. 나는 겉으로 웃으면서 그분들의 이민생활의 어려움과 건조해가는 인생을 쓰다듬었다. 마른 장작이지만 불을 당기면 뜨거운 불이 거기에서 나온다고 믿고 작은 불부터 지피기에 노력을 했다. 과연 뜨거운 불길이 그들에게서 솟았다.

문학작품도 별로 없이 문단정치에 여념이 없는 사람, 학문으로서 문학의 배경이 없고 학문이 주출돌이 되어주지 못하니 신변잡기나 타령, 아니면 얍싸하고 시시껄렁한 감정풀이나 하면서 문인이라고 지칭하는 사람들, 제대로 된 문학의 글쓰기에는 능력 부족임을 스스로 알고있는지 노력은 담 너머에 팽개치고 이름 석자만 공허한 바람에 날리면서 바쁘게 다니는 사람들과 비교할 때 이 분들이야말로 충실한 문학으로 충실한 문학인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절로 솟아났다.

엄한 부모 밑에서 효자가 나오고 호랑이같이 무서운 선생 밑에 우등생이 나온다.

그런 결과 한국 문단에 많은 분들이 좋은 글로서 등단 진출을 했다.

수필가 양정숙씨는 이백여편 응모작품에서 최우수 작품으로 추천이 되었고 역시 수필을 쓰시는 손태야씨는 문장이 산문시에 가깝고 긴장미와 미세한 부분까지의 관찰은 수필가로서 대성할 것이란 칭찬으로 추천을 받았을 때의 나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고 나의 보람이었다.


신인에게 제공되지 않는 특집기획에 시인 변창하씨도, 또한 시인 김유인씨도 주목되는 작품으로 당당하고 환하게 발표되었을 때도 그 기쁨은 가르쳐온 사람으로 무엇에 견줄 수 없이 뿌듯하였다.

어떤 사람이 금쪽같은 모습을 소모하며 계획없이 오기로 살아간다면 가장 가까운 타인의 인생부터 희생을 시키듯이 가끔 문학쪽에 심성이 맞지 않는 사람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대로 스스로 극기의 노력이 있을 거란 기대속에 멀리 보며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런 것이다. 인생도 그러하고 문학도 그러하다. 연민이 있어도 한번 가는 목숨의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차마’ 때문에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자신의 허비다. 허비해서는 딱 한 번 있는 인생에서 행복한 결산이 나오지 않는다.

문학의 존재 이유는 인간의 행복한 결산을 위해서이다.

버릴 것은 버리고 잊을 것은 잊고 다시 찾아야 할 것은 다시 찾아 정착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생활인이고 생활문학을 하는 사람이다. 올해의 결산을 해 보면서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한국일보와 한국일보사 전직원의 보살핌과 후원이다.

김윤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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