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송년 동창모임에 가는 세 동문들

2003-12-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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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 동문회 같은 모임이 있어 먼 길을 갈 때, 인근 동문을 불러 태우고 운전석에 앉은 A동문은 남의 운전 노고를 덜어줌에서 오는 희열감도 있어서지만 그가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도 상대방에 다가서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심정에 기인한다. 움직이는 차 안에서 대화가 깊어져 불의의 사고가 있을 때 법적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혼자 가느니 여럿이 한 차로 가는 것을 기회 있을 때마다 즐겨 택한다.

목적지까지 가는 사이 자신의 성품을 알리고 서먹한 분위기가 해소된다면 서로의 차이점을 이해하고 마음을 같이 하기가 훨씬 쉬워질 것을 꼭 믿는 것이어서 아내도 못 말린다.

자신이 자유주의적임을 자처하는 B동문은 정의감이 남다른 데다 퍽이나 솔직한 편이다.


“송년 동창모임에 빠지지 않으려 해도 졸업 서열에 의한 선후배 관계를 너무 강조하는 분위기가 못마땅해 존경할만한 선후배를 만난다는 것은 기쁜 일이나 권위 주장이 너무 강하게 나타나면 동창회의 양적 발전을 기대할 수 없지. 파티장에서 선배 깍듯이 모시는 일도 불편하지만 군대 서열까지 들먹이는 선배를 대하는 일은 무척 피곤하거든. 이런 모임에 내가 운
전해서는 참석할 의사가 없지.”

일년에 한번 있는 동창 송년모임에 참석해 대화 할 상대를 만나보고 마음을 새롭게 여는 기회를 갖고 하루저녁을 즐기는 일은 동창들이기 때문에 주어진 가치있는 선물인 것이다.

그러나 선후배 관계에서 오는 구속이 불편해 참석을 기피하는 동문은 그렇다 해도 교회 때문에 불참하는 동문들이 의외로 많아 자리가 비어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을 떠날 때 없어진 직함 대신 목사님, 장로님 등으로 대신 불려지는 것은 유쾌한 일일테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동창모임을 멀리 하는 것에 불쾌감을 갖게 돼 추수감사 예배 때 길쌈 매는 일을 장려하는 목사의 손이 아내의 손 보다 더 부드러워 보일 때 무척 부럽더군.
생활을 영위할 재능을 기울일 노력도 않고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는데다 미국법의 보호가 교회를 양적으로 번창하게 해주고 이들의 열정으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동창모임이 파괴되는 것을 볼 때 분통을 느끼게 돼.
한 친구는 높은 아내의 수입으로 생활하면서 최저임금을 겨우 웃도는 자신의 전수입을 교회에 바치고 장로가 되어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측은해 보이더군. 이런 사람들의 생활이 얼마나 불합리한가는 그들 집에 초대되어 가보면 알게 되는데 거실에는 아내-자식 사진 걸기를 거부하면서 침실 머리맡에는 2000년 전에 죽은 사람의 상을 걸어놓고 자는거야.
어쩌다 파티장에 참석해서는 모두가 기도시간을 가질 것을 요구하는 그들에게서 인간미를 기대할 수 없지. 나 자신은 신에 대한 믿음은 없지만 인간에 대한 믿음은 내 마음 깊숙히 자리잡고 있음을 확언할 수 있어. 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어리석음에서 해방되어 송년모임을 찾고 동창을 만나는 즐거움을 느끼는 동문들이 좀 더 많이 보일 때 서로의 존경심은 증
대되고 우리 사회는 더 밝아질거야.”

온화한 성품의 기독교인인 C동문의 의견이 보태지면서 한 차로 동문회로 향하는 A동문의 의도가 모두에게 이해되었다.

“교회 내에서도 목사나 장로들과 대결해 해결책을 찾아보지만 그들의 열정은 아무도 당해내질 못해 가지만 그들도 언젠가는 인간 일을 중요시하는 신념을 갖게 될 것이고 신을 찬양하고 교회를 떠받들듯이 동창들에게도 그런 마음을 갖는 날이 올 것을 믿기에 절망은 금물이지”

백만옥(전 고교 역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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