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365장의 인생소설

2003-12-2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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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물어간다. 화살처럼 빠르게 세월이 지나간다. 지난 1년이 꿈을 꾼 것만 같이 지나갔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바로 연말(年末)이 된다.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한 해를 정리할 때다. 정리라고, 거창하게 할 필요는 없다. 인생을 모두 정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발자국을 돌아보며 새로운 해를 맞이할 자세는 준비돼야 하겠다.

한 해를 돌아볼 때,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얼마나 자신에 충실했나를 생각해야겠다. ‘자신에게 충실’이란 말속에 ‘자승자강(自勝自强)’이란 단어가 생각난다. 자승자강에는 자신을 이기는 자가 강하다란 뜻이 담겨있다. 정말, 한 해를 살면서 얼마나 자기 자신을 이기며 겸손하게 살았나 뒤돌아보아야겠다.

흔히 한 해가 시작될 때는 마음이 부풀어 이 해에는 꼭 이런저런 일은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그 결심이 한 해를 뒤돌아보는 시점에서 얼마나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실망이 따를 수밖에 없다. 결심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이유 중 하나에는 결심하는 내용 자체가 너무 과중하거나 비현실적이기 때문일 수 있다.


한 해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자신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며 긍지를 가지고 살았는지도 뒤돌아보아야겠다. 또 얼마나 긍정적(肯定的)인 사고로 살았는지, 또 얼마나 합리적으로 살려고 노력했는지도 돌아보아야겠다. 이런 반성 외에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당했거나 상처를 받지 않았는지도 돌아보는 정리가 있어야겠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이웃도 사랑할 수 없다. 자신의 목숨과 존재가 생의 최고 가치가 됨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남도 귀중하게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남의 생명과 존재도 자신의 존재와 목숨하고 똑같은 가치를 갖고 있기에 그렇다. ‘자신을 사랑함’과 ‘이기주의(利己主義)’는 여기에서 구별된다. 이기주의는 남은 생각 않고 자신만 고집함을 말한다.

자신을 사랑함이란 자기 자신에 대한 ‘긍지 있음’을 뜻한다. 자기 자신에게 용기를 부여하는 것이 ‘자신을 사랑함’이다. 자신이 처한 환경이 역경(逆境)일수록 자신은,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자신은 용기를 잃게 된다. 모든 것을 잃어도 용기만 잃지 않으면 험한 세상, 이겨나갈 수 있다. 이 용기는 ‘자신이 자신을 사랑함’에서 비롯된다.

자신을 사랑하면 ‘나는 할 수 있다’란 긍정적인 사고가 생긴다. 자신을 미워하며 비관하는 사람이 ‘나는 할 수 있다’란 용기를 갖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밭이 없는 곳에 씨를 아무리 뿌린들 씨는 싹을 틀리 없다. 자신을 사랑함이란 곧 ‘긍정’이란 씨의 터와 밭이 된다. 이런 곳에 긍정이란 씨를 뿌리면 ‘가능성’이란 싹이 튼다.

종교의 역할이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을 불가능한 상황에서 가능한 상황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을 사랑하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용기를 주지 못하며 역경을 이기게 하지 못하는 종교는, 종교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기에 종교는 삶에 필요하다. 역경에서도 자신과 용기를 잃지 않으면 가능성의 탈출구는 뚫려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때를 기다리며 역경을 거치는 과정에서 자신을 미워하게 되면 안 된다. 끝까지 사랑해야 한다. 일이 안 풀리고 관계가 거북해지는 것은 자기만 고집하는 이기주의에서 비롯된다. 상대방을 생각하면서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상대방도 나와 같은 귀중한 인격과 존재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배려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자 깨달음이다.

지난 1년간 합리적으로 살려고 노력했으나 자신으로 인해 상대방이 상처받은 것이 있으면 정리해야 한다. 정리하는 방법은 사과(謝過)다.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찾아가 용서를 구해야 한다. 해가 바뀌면 사람의 마음이 더 모질게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면 반성 가지고 만은 안 된다. 적절한 대가와 보상도 필요할 때가 있다.


한 해가 저물어 간다. ‘2003년’은 역사 속의 발자취로 그 모습을 감추려한다. 역사의 장으로 들어가는 금년 한 해지만, 그 역사 속에 자신의 살아온 모습도 함께 들어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해 동안 얼마나 아름답게 살았든, 아니면 얼마나 추하게 살았든 365장의 인생소설 페이지는 역사의 장으로 묻어두고 한 해의 감을 정리하고 새해를 맞이해야 한다.

자신에게 충실하게, 자신을 사랑하며, 얼마나 남과 더불어 좋은 삶을 살았는지 깊이 뒤돌아보는 가운데 새로운 해를 맞이해야겠다. 365장의 멋진 인생소설을 새롭게 써나가기 위해서 말이다.

김명욱 <종교전문기자.목회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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