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마다 잎들이 연초록으로 올라오는 예쁜 달 4월이다. 사라진 듯한 생명이 돌아와 새로운 희망이 솟고 성긴 삶의 길에 용기가 채워진다. 아침저녁으로는 아직 찬 기운이 들지만 낮의 따스한 햇살을 머금은 어린 잎들은 봄바람을 타고 살랑인다.
이맘 때면 우리 문학회 회원들은 누가 뭐라하지 않아도 서로 두고온 고향을 그리고 자라 온 시절의 봄을 추억하며 글을 발표한다. 논둑이나 얕은 산등성이에서 파릇파릇 돋아나는 냉이, 달래, 쑥, 씀바귀 등에 입맛다시고 안개 자욱한 들녘에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 새벽을 깨우는 새들의 청아한 사랑의 교향곡을 들으며 노란 개나리 울타리를 지나 벚꽃, 철쭉, 매화, 목련의 봉오리 터지는 싱그러운 소리에 눈을 반짝이며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한 어린 시절로 달려간다. 청초롭고 상큼한 봄의 향기가 코끝을 자극하는 계절이다.
먹고 사는 문제의 틀 밖에서 굳이 안해도 되는 것들을 자신의 존재 바탕에 심고 사는 시인들이다. 글을 쓰면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하는 모습이 대단하다. 살면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과 물음, 삶과 죽음, 사랑과 미움, 만남과 이별, 진실과 허구등에 대한 생각과 경험을 표현하고자 한다. 인간이 관측할 수 있는 영역의 비밀에 시적 언어로 자연스럽게 다가가고자 공부하고 있다.
문학뿐만 아니라 어떤 학문을 공부하더라도 배움에서 우리는 순수한 기쁨을 맛볼 수 있지만 그 분야에서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다. 알고자 노력할수록 그 대상에 대한 깊이는 더욱 깊어지고 때로는 모름에 빠져들게되고 어쩌면 영원히 모르게 될 것이라는 깨달음 속에 마음이 겸손해지기도 한다. 사실 앎과 모름의 경계는 모호하다.
클로드 드뷔시의 ‘달빛’을 즐겨 듣는다. 마음이 복잡하거나 힘들 때 ‘달빛’은 마음을 차분하게 다듬고 나를 평안한 미지의 세계로 이끈다. 이 곡은 이미지로 가득한 음악이다. 인상주의 음악이 그렇듯이 애매모호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포착하기 힘든 세계의 신비롭고 미묘한 흐름을 타면서 들을 때마다 다른 느낌과 뉘앙스를 준다.
프랑스 시인 폴 베를렌의 시 ‘하얀 달’에서 영감을 받아 드뷔시가 작곡했다는 ‘달빛’을 들으며 베를렌의 시 ‘하얀 달’을 떠올려 본다. “하얀 달이 / 빛나는 숲속에서 / 가지마다 / 우거진 잎사귀 사이로 / 흐르는 목소리 // 오 사랑하는 사람아 // 깊은 겨울 / 연못에 드리운 / 버드나무의 / 검은 그림자는 / 바람에 흐느끼네 // 아, 지금은 꿈꾸는 때 // 별들이 / 무지개 빛으로 / 반짝이는 하늘에서 / 크고 포근한 / 고요가 내려오는 듯 // 아늑한 이 시간”
베를렌이 약혼녀 마틸드 모테에게 헌정했다는 이 시에서 영향을 받은 드뷔시는 그 당시 인상주의 회화에서도 영향을 받아 그의 음악은 자유롭고 대담한 구성과 유연한 멜로디가 특징이라 한다. 그러나 프랑스 시를 우리 말로 번역할 때 시의 감정과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낀다는 건 불가능하고 특히 상징주의 시에서는 시의 형식이 언어의 의미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알려준다는 면에서 정확히 이해하는 건 힘들다고 한다.
화가 모네, 르누아르 등 인상주의 작가들은 구름, 바다, 풀잎, 수련, 꽃, 나무, 인물 등을 그리는데 야외 사생을 통해 햇빛의 순각적인 효과를 포착, 세부 묘사 대신 전체적인 시각적 효과로, 혼합된 색과 순수한 색을 짧고 끊어진 붓놀림을 통해 강렬한 색체진동효과를 내는 것인데 반사되고 끊임없이 변하는 빛의 조화로 표현된 대상은 항상 다르게 보인다. 그래서 빛과 색채의 변화를 포착해서 순간의 인상을 표현하며 착시효과를 주는 그림을 대하면 모호함이 느껴진다.
달은 늘 우리를 지켜준다. 캄캄한 밤에 갈 곳 잃은 이들에게 빛을 주듯이, 달빛에 안기면 어느새 그 빛이 은은히 스며들어 평온해지며 삶의 방향이 그려진다. 자연을 조금씩 알아 갈수록 ‘더 겸손하고 더 사랑하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살라’는 연초록 메세지가 들려오고 있다, 이 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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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잔 워싱턴 두란노문학회,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