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 짧은 문장은 단순한 처세의 요령을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지만, 동시에 결코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도 놓인다. 해야 할 일, 감당해야 할 책임, 피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사람은 쉽게 불평하거나 체념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상황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꿔라. 바꿀 수 없다면 그것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라. 그리고 불평하지 마라. 삶은 결국 상황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당신의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30대 중반부터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는 태도로 살아왔다. 처음에는 업무 부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다짐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 다짐이 습관이 되자 변화가 시작됐다. ‘피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안에서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월요병은 사라졌고 바쁜 일정 속에서도 피로와 스트레스는 더 이상 나를 지배하지 않았다. 같은 일이었지만 태도가 바뀌자 그것은 부담이 아니라 즐거움이 됐다.
공자는 이미 이를 통찰했다.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좋아하는 것을 넘어 몰입하고 의미를 발견하며 기쁨을 느끼는 상태에서 인간의 잠재력은 가장 크게 발휘된다.
이 원리는 공부와 일, 그리고 삶 전반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억지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학생과 배움의 즐거움을 알고 몰입하는 학생의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커진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일을 단순한 생계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과, 자신의 일이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는지 이해하고 몰입하는 사람의 성과는 비교하기 어렵다.
세계적인 선수들의 사례는 이를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박지성·손흥민·이영표 선수는 한결같이 축구를 사랑하고 즐긴다고 말한다.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혹독한 훈련과 치열한 경쟁을 버텨낸 힘 역시 그 즐거움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즐거움은 고통을 견디게 하고 깊은 몰입으로 이끌며 결국 탁월함으로 이어진다.
돌이켜보면 나 또한 한때 일을 의무감으로만 수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일요일 밤이면 다음 날을 생각하며 마음이 무거워졌고 끝없는 일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이 일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 순간 깨달았다. 문제는 일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였다는 것을. 이후 나는 결심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고.
태도를 바꾸는 일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일의 의미와 가치를 알고 일에 집중하다 보면 변화는 서서히 시작된다. 일은 더 이상 부담이 아니라 도전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 우리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은 의미를 느낄 때 움직이고, 즐거움을 느낄 때 지속한다. 삶을 이끄는 힘은 외부 조건이 아니라 내면의 태도에 있다. 불평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지만 태도는 모든 것을 바꾼다. 같은 현실 속에서도 어떤 이는 지치고 어떤 이는 성장한다. 그 차이는 환경이 아니라 태도다.
억지로 끌려가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삶의 의미를 생각하며 즐기며 살아갈 것인가. 그 선택이 결국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불평할 이유가 더 늘어나고 즐기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우리는 결국, 자신이 선택한 태도만큼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 태도가 당신의 인생을 어디로 데려갈지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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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길상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