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요칼럼] 그들이 사라진 자리

2026-04-07 (화) 12:00:00 정유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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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태양광 모니터를 살피던 중 패널에서 이물질을 발견했다. 태양광을 설치한 뒤뜰은 소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곳이다. 사위와 함께 뒤뜰로 향했다.

7미터 높이 패널 위쪽에 무언가 있었다. 세워 있던 패널을 옆으로 누이고 보니 담장 안에 상주하는 매였다. 매는 패널 틈새에 한쪽 발이 끼어 빠져나오지 못하고 생명을 잃은 후였다. 빠져나오려 얼마나 애를 썼던지 끼인 발이 꼭대기에서 1미터 아래로 밀려 내려와 있었다. 이 구역을 호령하던 대장의 뻣뻣한 사체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늘 같이 있었던 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휘~휘 날아다니며 먹이를 사냥할 때는 몰랐는데 날개를 펼쳐 놓으니 매는 보기보다 훨씬 컸다. 태양광 패널 꼭대기에서 매서운 눈으로 먹이를 스캔하고 있었을 매의 모습이 눈에 선히 그려졌다. 이때만 해도 우린 매가 사라진 후의 변화를 생각지 못했다.

한 쌍의 매는 이곳의 지배자였다. 하늘 높이 날아오르다가 어느새 나무 위로 내려앉기라도 하면 오금이 저린 동물들은 숨기에 바빴다. 눈 쌓인 겨울에는 낙엽을 떨군 앙상한 나무에 올라 정원 구석구석 레이저를 뿜어내며 쏘아보았다. 눈 덮인 잔디 위를 먹이 찾아 잽싸게 움직이는 다람쥐나 들쥐, 심지어 이웃 연못에서 놀러 온 오리도 그 눈에 뜨이면 영락없었다. 토끼가 아무리 잘 뛰어도 날카로운 매의 발톱에 걸리면 내일을 장담할 수 없을 터였다. 어느 사이 내리꽂듯 수풀 사이로 들어가 사냥한 먹이의 가죽을 벗겨 참나무에 척 걸쳐놓고 쪼아 먹곤 했다.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전쟁이 벌어지는 이 자연에서 매는 최상위 포식자였다.


일리노이의 겨울은 추웠다. 중동부 지역에 많은 눈이 내렸고 이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눈 위에는 여러 짐승의 발자국이 어지러웠다. 다람쥐는 눈 쌓인 나무 사이로 곡예를 하고 살이 통통히 오른 토끼도 제멋대로 뛰어다녔다. 자태가 아름다운 홍관조가 연갈색의 암컷과 새끼를 거느리고 나타났다. 하얀 눈 위 가지 사이로 움직이는 붉은 깃털이 한껏 늠름해 보였다. 매가 떠난 자리는 그들에겐 살판나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땅 밑에도 이 소식이 전해졌을까? 영하 15C의 혹한에도 단풍나무 가지 끝은 붉은색으로 변하고, 뿌리를 감싼 땅속의 술렁이는 온기가 느껴졌다.

태양광 에너지는 태양 빛을 태양전지를 통해 직접 전기로 바꾸는 친환경 재생 에너지다. 연료가 필요 없고 무공해라는 장점이 있지만, 날씨에 따른 발전량의 변동과 초기 설치비용이 적잖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일부에선 산의 나무를 베어내고 태양광을 설치한 결과 우기의 집중호우를 견디지 못한 산사태로 피해를 보았다거나, 갯벌에 세운 태양광이 폭풍에 깨지고 무너져 어민에게 피해를 주고 새똥으로 범벅이 된 패널의 흉한 모습이 뉴스를 타기도 했다. 태양광 패널의 조류충돌과 주검도 심심찮게 보인다. 자연을 해치지 않고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태양광이 공존하던 자연의 한 부분을 해치다니 아이러니하다. 사람 탓일까? 하지만 인류에겐 에너지가 절실하고 그 에너지를 무공해로 얻기 위해 태양광을 대체할 대안은 없을 성싶다.

텃밭 상추도 키워야 하는데 거침없는 동물 친구들이 눈에 걸린다. 남은 매 한 마리는 어디로 갔을까. 4월이 코앞인데 이곳엔 아직도 눈발이 날린다.

<정유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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