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다시보기] ‘빛의 화가’ 르누아르 다시 읽기
2026-03-13 (금) 12:00:00
심상용 / 서울대 미술관장
1870년대 이후 프랑스 미술 시장은 국가 중심의 살롱 체제에서 상업 화랑 체계로 재편됐다. 부르주아 중산층이 미술품의 새로운 소비자로 부상하면서 미술은 감상의 대상을 넘어 사회적 지위를 대변하는 문화 자본으로 간주됐다. 새로운 상업 시장 조건에 부합하는 화가로 단연 오귀스트 르누아르를 들 수 있다. 그의 대표작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를 보라. 르누아르의 짧고 부드러운 붓질이 춤추는 남녀 사이로 와인에 취해 홍조를 띤 여인의 뺨 위를 스치듯 지나면서 밝은 햇살을 균등하게 분배한다. 르누아르의 회화는 누구나 이 행복에 참여할 수 있다는 초대장이다. 부르주아 소비자는 그림의 분위기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벨 에포크의 낙천주의를 자신의 거실에 걸고 싶은 충동으로 지갑을 연다. 일상의 모든 통증이 순간 유예된다.
하지만 물랭 드 라 갈레트의 행복을 배달하던 르누아르의 빛이 이내 논쟁의 도마에 올랐다. 시장은 르누아르의 감성에 갈채를 보냈지만 알베르 볼프 같은 비평가는 새로운 소비자의 취향에 대한 아첨을 봤다. 현대의 비평가 그리셀다 폴록은 르누아르의 보슬보슬한 붓질에서 부르주아적, 남성적 시선의 낯익은 쾌락의 판타지를 읽어낸다.
논쟁의 배경에는 프랑스 사회의 균열이 있다. 오스만식 대로를 거닐며 카페와 전시장을 즐기는 것은 부르주아 계층의 전유물로 정치적으로 소외된 노동자 계층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두 계층은 상이한 시각 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르누아르의 햇살은 ‘부르주아의 정원’ 위로만 편향되게 쏟아진다. 점잖은 비평가 에밀 졸라도 르누아르의 회화가 행복한 얼굴과 부드러운 살결에 정신이 팔려 정작 진실의 의무를 간과하는 모습을 지적했다. 1880년대 이후로는 르누아르도 자신에게 부착된 ‘상업적 인상주의자’의 딱지를 인식해 점차 고전주의적 윤곽이 선명한 인체 표현으로 이동했다.
르누아르는 빛을 그린 화가이지만 그 빛의 결정적인 한 줄기는 근대 미술이 시장과 맺은 사업적 관계로부터 온다. 그의 캔버스 위로 떨어지는 햇살은 자연의 빛인 동시에 부르주아의 미술 소비구조를 비추는 경제적 조명이기도 하다. 오늘날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의 경매가가 천문학적 수준에 이르고 그의 스타일이 자본의 상징이 됐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심상용 / 서울대 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