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소행성 충돌 위기 탈출
2026-03-12 (목) 12:00:00
양홍주 / 한국일보 논설위원
1998년 개봉 영화 ‘딥임팩트’는 혜성 하나가 지구로 돌진하면서 벌어진 위기를 다뤘다. 영화에선 지름 11㎞에 달하는 대형 혜성이 시시각각 지구로 다가오고, 모두는 마지막을 준비한다. 멸종을 피할 기회는 혜성에 외력을 가해 궤도를 바꾸는 것뿐. 마침내 주인공들은 우주선을 타고 혜성으로 날아가 내부를 폭파하는 데 성공한다. 혜성은 일부 부서져 흩어지고 잔해는 경로를 바꿔 지구를 피해 갔다. 머리 위 수없이 오가는 천체가 언제라도 지구 멸망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상상. 이는 영화에서만 가능한 일일까.
■현대 과학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당면 위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준도 못 된다. 태양계만 보더라도 소행성은 최소 수억 개에 달하고, 대략 태양으로부터 1광년 떨어진 오르트 구름에서 생성되는 혜성은 관측된 것만 수천 개라고 한다. 지난해 말 사이언스지에 따르면 지구 충돌 시 도시 하나를 날릴 파괴력을 지닌 소행성은 2만5,000개에 이르는데 이 중 절반만 위치가 파악됐다. 이 정도면 지구는 빗발치는 총탄세례 속에서 생존하고 있는 셈이다.
■2024년 발견된 직경 50m(추정) 소행성 ‘2024YR4’는 당시 지구 궤도로 향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와 학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지구 충돌 확률은 3.1%까지로 계측됐는데, 이는 사례를 찾기 힘든 토리노 척도 3등급(광역적 피해 우려 수준)에 해당한다. 그러나 충돌 예상 시점이 2032년으로 알려졌던 이 소행성은 얼마 후 사실상 ‘위험도 0%’로 돌변했다. 분명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지만, 이유는 아직 분명치 않아 꺼림칙하다.
■최근 이러한 천체 위기를 적극 방어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2022년 미 항공우주국이 소행성 디모르포스에 우주선을 충돌시켰는데, 이 천체 공전 궤도가 바뀐 사실이 확인되면서다. 이는 인공 물체가 천체 경로에 영향을 미친 첫 사례다. 미래 어느 날 다가올지 모를 지구 멸망 위기를 벗어나게 할 단초가 마련됐다는 의미다. 세계가 서로를 죽이는 전쟁에 집착하는 대신, 힘을 모아 맞서야 할 위기는 단지 소행성 충돌만은 아닐 것이다.
<양홍주 / 한국일보 논설위원>